판소리란 무엇이냐? (2)
2021. 8. 16. 12:06ㆍ전통음악
판소리란 무엇이냐? (2)
열두 마당과 다섯 마당
판소리는 일정한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를 소리와 말로 엮은 것이다. 판소리로 짜인 이야기의 가짓수에 따라 판소리의 가짓수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조선 왕조의 정조, 순조 무렵에는 그때에 수도 없이 많았을 여러 판소리 가운데서 열두 가지를 골라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일렀던 것 같다. 여기서 마당이라 함은, 소리, 춤, 노래 따위를 헤아리는 데에 쓰이는 단위로, 요즈음말로 '과장'과 같으며, "한판 논다", "한바탕 논다"에서와 같이, '판' 또는 '바탕'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판소리 열두 가지를 골라 열두 마당으로 꼽는 것은 꼽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조선 왕조 순조 때의 문인인 송 만제가 적은 "관우희"라는 글에는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이 아주 간단하게 적혀 있는데, "관우희"를 학계에 소개한 국문학자 이 혜구는 이를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 '왈자타령', '강릉 매화전', '가짜 신선 타령'으로 밝혔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에 정 노식이 쓴 '조선 창극사'에는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배비장타령',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춘향가', '적벽가', '강릉 매화전', '숙영낭자전', '옹고집'으로 적혀 있다. 둘을 견주어 볼 때에, 열 마당은 서로 같고, "관우희"의 '왈자타령'과 '가짜 신선 타령'의 자리에 '조선 창극사'의 '무숙이타령'과 '숙영낭자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왈자타령'과 '무숙이타령'은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 내용은 같다고 할 수 있으므로, 하나만 서로 다를 뿐이다. 열두 마당 가운데서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은 사설만 전해지고, '무숙이타령', '강릉 매화전' '가짜 신선 타령'은 사설*조차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소리가 남아 불리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인데, 이것을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 부른다.
기원과 발전
판소리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을의 큰 굿 끝에 벌이는 판놀음에서 놀이꾼들이 여러 놀이를 벌이는 동안에 소리 광대가 한 자리 끼어서 소리도 하고, 재담도 하고, 몸짓도 하며 긴 이야기를 엮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리 광대가 소리와 아니리로 엮는 공연 형태의 기원도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판소리처럼 소리와 아니리를 섞어 부르며, 소리의 장단이 판소리와 비슷한 서사무가의 공연 형태를 빌어 온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판소리는 조선 왕조 전기에도 불렸을 것으로 짐작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 없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설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30년인 1754년에 호가 '만화'인 유 진한이 한시로 적은 만화본 '춘향가'이다. 이를 보더라도, 적어도 숙종 무렵에는 판소리가 틀을 잡게 되었을 것이다. 영조, 정조 때에는 우 춘대, 하 은담, 최 선달과 같은 명창들이 판소리 열두 마당을 불렀을 것 같은데, 그때의 판소리는 길이도 짧고, 사설이나 음악이 소박하였을 것으로 짐작 된다. 순조 무렵에는 '여덟 명창 시대'라고** 하여 권 삼득, 송 흥록, 모 홍갑, 염 계달, 고 수관, 김 제철(또는 김 계철), 신 만엽, 주 덕기, 박 유전과 같은 명창들이 나서 갖가지 장단과 조를 짜서 판소리의 음악 수준을 크게 발전시켰다. 권 삼득은 설렁제를, 모 홍갑은 강산제를,*** 염 계달과 고 수관은 경드름과 추천목을, 김 제철과 신 만엽은 석화제를 짜넣었고, 가왕이라고 불리던 송 흥록은 진양 장단과 우조, 계면조를 발전시켜 판소리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끌어 올렸다고 전해진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다. 전라북도에서 시작되어, 전라남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의 운봉, 구례, 순창과 같은 곳에서는 동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씩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며, 송 흥록을 시조로 삼는다.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과 같은 곳에서는 서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서편제의 특징은 정교하고 감칠맛이 있다는 것이다. 서편제 가운데 박 유전제는 그 시조로 삼고 있는 박 유전의 호를 따서 '강산제'라고도 한다. 중고제는 책을 읽는 듯한 '송서제'와 비슷한 점이 많은 소리로서, 소리의 높-낮이가 분명하다.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불렸는데, 염 계달, 김 성옥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판소리가 이와 같이 서너 가지 제로 나뉘어 발전된 것은 여덟 명창 시대에 시작된 일인데, 이것으로써 그때 명창들의 활동이 독보적이면서도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철종 무렵은 이른바 '후기 여덟 명창 시대'로,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정 춘풍, 장 자백, 이 날치, 정 창업, 김 정근, 한 송학과 같은 명창들이 나왔는데,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장 자백은 동편제를, 이 날치, 정 창업은 서편제를, 김 정근, 한 송학은 중고제를 발전시켰다.
고종 무렵에는 박 기홍, 김 창환, 김 찬업, 송 만갑, 유 성준, 김 석창, 이 동백, 김 창룡, 김 채만, 정 정렬과 같은 명창들이 활약했는데, 이 가운데 김 창환, 송 만갑, 이 동백, 김 창룡, 정 정렬이 '다섯 명창'으로 꼽힌다. 이 다섯 명창의 뒤를 이어 장 판개, 김 정문, 공 창식, 박 중근, 임 방울, 김 연수, 이 화중선, 박 녹주와 같은 명창이 나왔으며, 지금은 김 여란, 정 광수, 박 동진, 박 초월, 김 소희, 박 봉술, 한 승호, 정 권진과 같은 명창들과, 고수에는 김 명환이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
*사설 : 판소리의 가사.
**여덟 명창 시대 : 그때에 쓰이던 말이 아니고, 뒤엣사람들이 부르기 쉽도록 쓰기 시작한 말인데, 철종 무렵의 여덟 명창 시대와 구별하려고 '전기 여덟 명창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여덟 명창은 꼽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주 덕기나 박 유전이 빠지는가 하면, 황 해천이 들기도 한다.
***강산제 : 판소리에서 쓰이는 '조'의 하나인데, 유파의 하나인, 박 유전을 시조로 삼는 '강산제'와는 뜻이 다르다.
1987년 출판된 한국브리테니커 회사의 뿌리깊은나무판소리 해설 자료에서 옮겨왔습니다.
#음악이있는집 #andiemusik #판소리란무었이냐 #뿌리깊은나무판소리
열두 마당과 다섯 마당
판소리는 일정한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를 소리와 말로 엮은 것이다. 판소리로 짜인 이야기의 가짓수에 따라 판소리의 가짓수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조선 왕조의 정조, 순조 무렵에는 그때에 수도 없이 많았을 여러 판소리 가운데서 열두 가지를 골라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일렀던 것 같다. 여기서 마당이라 함은, 소리, 춤, 노래 따위를 헤아리는 데에 쓰이는 단위로, 요즈음말로 '과장'과 같으며, "한판 논다", "한바탕 논다"에서와 같이, '판' 또는 '바탕'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판소리 열두 가지를 골라 열두 마당으로 꼽는 것은 꼽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조선 왕조 순조 때의 문인인 송 만제가 적은 "관우희"라는 글에는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이 아주 간단하게 적혀 있는데, "관우희"를 학계에 소개한 국문학자 이 혜구는 이를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 '왈자타령', '강릉 매화전', '가짜 신선 타령'으로 밝혔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에 정 노식이 쓴 '조선 창극사'에는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배비장타령',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춘향가', '적벽가', '강릉 매화전', '숙영낭자전', '옹고집'으로 적혀 있다. 둘을 견주어 볼 때에, 열 마당은 서로 같고, "관우희"의 '왈자타령'과 '가짜 신선 타령'의 자리에 '조선 창극사'의 '무숙이타령'과 '숙영낭자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왈자타령'과 '무숙이타령'은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 내용은 같다고 할 수 있으므로, 하나만 서로 다를 뿐이다. 열두 마당 가운데서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장끼타령', '옹고집'은 사설만 전해지고, '무숙이타령', '강릉 매화전' '가짜 신선 타령'은 사설*조차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소리가 남아 불리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인데, 이것을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 부른다.
기원과 발전
판소리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을의 큰 굿 끝에 벌이는 판놀음에서 놀이꾼들이 여러 놀이를 벌이는 동안에 소리 광대가 한 자리 끼어서 소리도 하고, 재담도 하고, 몸짓도 하며 긴 이야기를 엮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리 광대가 소리와 아니리로 엮는 공연 형태의 기원도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판소리처럼 소리와 아니리를 섞어 부르며, 소리의 장단이 판소리와 비슷한 서사무가의 공연 형태를 빌어 온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판소리는 조선 왕조 전기에도 불렸을 것으로 짐작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 없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설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30년인 1754년에 호가 '만화'인 유 진한이 한시로 적은 만화본 '춘향가'이다. 이를 보더라도, 적어도 숙종 무렵에는 판소리가 틀을 잡게 되었을 것이다. 영조, 정조 때에는 우 춘대, 하 은담, 최 선달과 같은 명창들이 판소리 열두 마당을 불렀을 것 같은데, 그때의 판소리는 길이도 짧고, 사설이나 음악이 소박하였을 것으로 짐작 된다. 순조 무렵에는 '여덟 명창 시대'라고** 하여 권 삼득, 송 흥록, 모 홍갑, 염 계달, 고 수관, 김 제철(또는 김 계철), 신 만엽, 주 덕기, 박 유전과 같은 명창들이 나서 갖가지 장단과 조를 짜서 판소리의 음악 수준을 크게 발전시켰다. 권 삼득은 설렁제를, 모 홍갑은 강산제를,*** 염 계달과 고 수관은 경드름과 추천목을, 김 제철과 신 만엽은 석화제를 짜넣었고, 가왕이라고 불리던 송 흥록은 진양 장단과 우조, 계면조를 발전시켜 판소리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끌어 올렸다고 전해진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다. 전라북도에서 시작되어, 전라남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의 운봉, 구례, 순창과 같은 곳에서는 동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씩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며, 송 흥록을 시조로 삼는다.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과 같은 곳에서는 서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서편제의 특징은 정교하고 감칠맛이 있다는 것이다. 서편제 가운데 박 유전제는 그 시조로 삼고 있는 박 유전의 호를 따서 '강산제'라고도 한다. 중고제는 책을 읽는 듯한 '송서제'와 비슷한 점이 많은 소리로서, 소리의 높-낮이가 분명하다.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불렸는데, 염 계달, 김 성옥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판소리가 이와 같이 서너 가지 제로 나뉘어 발전된 것은 여덟 명창 시대에 시작된 일인데, 이것으로써 그때 명창들의 활동이 독보적이면서도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철종 무렵은 이른바 '후기 여덟 명창 시대'로,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정 춘풍, 장 자백, 이 날치, 정 창업, 김 정근, 한 송학과 같은 명창들이 나왔는데,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장 자백은 동편제를, 이 날치, 정 창업은 서편제를, 김 정근, 한 송학은 중고제를 발전시켰다.
고종 무렵에는 박 기홍, 김 창환, 김 찬업, 송 만갑, 유 성준, 김 석창, 이 동백, 김 창룡, 김 채만, 정 정렬과 같은 명창들이 활약했는데, 이 가운데 김 창환, 송 만갑, 이 동백, 김 창룡, 정 정렬이 '다섯 명창'으로 꼽힌다. 이 다섯 명창의 뒤를 이어 장 판개, 김 정문, 공 창식, 박 중근, 임 방울, 김 연수, 이 화중선, 박 녹주와 같은 명창이 나왔으며, 지금은 김 여란, 정 광수, 박 동진, 박 초월, 김 소희, 박 봉술, 한 승호, 정 권진과 같은 명창들과, 고수에는 김 명환이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
*사설 : 판소리의 가사.
**여덟 명창 시대 : 그때에 쓰이던 말이 아니고, 뒤엣사람들이 부르기 쉽도록 쓰기 시작한 말인데, 철종 무렵의 여덟 명창 시대와 구별하려고 '전기 여덟 명창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여덟 명창은 꼽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주 덕기나 박 유전이 빠지는가 하면, 황 해천이 들기도 한다.
***강산제 : 판소리에서 쓰이는 '조'의 하나인데, 유파의 하나인, 박 유전을 시조로 삼는 '강산제'와는 뜻이 다르다.
1987년 출판된 한국브리테니커 회사의 뿌리깊은나무판소리 해설 자료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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