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독일정통지휘자 오트마르 스위트너

2008. 7. 17. 22:25LP & CD

 

 

 

Otmar Suitner ! 

1922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스부르크 음악원을 거쳐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클레멘스 크라우스를 스승으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하였다.

1944~1962년 까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고, 1960년 동독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악 총 감독 겸 수석 지휘자로 발탁되어 본격적인 명성을 떨치기 시작.

이어 1964년에는 베를린 국립 가극장의 수석 음악 총감독으로 임명,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초청되어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연속 4년간 초빙된다. 교수 경력으로서도 자질을 인정받아 빈 음악원 아카데미의 지휘과 주임교수로 죽을 때 까지 직위를 유지하게 된다.

1965년에는 동독에서 '국가 예술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다.

 

음악 세계

철두철미한 독일-오스트리아의 정통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뛰어난 실력과 통솔력으로 오케스트라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낸다.

스위트너 만의 음악적 특징은 어떤 경우에서나 인위적인 부분이 없고 무리하지 않는 음악적 흐름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꾸밈 또한 없으면서도 생생하다. 설득력도 돋보인다. 자연스럽고 깊은 맛도 있다. 도무지 어울리기 어려운 이러한 음악적 독창성이 스위트너의 지휘봉 아래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이롭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지 않겠나!

 

비교 감상

오늘 감상한 곡은 내가 어릴 적부터 즐겨 듣던 모차르트의 여름 음악 가운데 트레드마크인 세레나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k.525이다. 

브루노 발터의 콜롬비아 심포니와 비교한다면,

발터-콜롬비아는 부드럽기 그지없고 정감이 넘치는 서정성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연주, 오케스트라의 음향에 있어서 조금 부족한 점은 앙상블의 정밀함이다. 아마도 녹음 전용으로 급조된 오케스트라의 한계 때문이리라.

반면에 스위트너-드레스덴의 연주는 좀 더 정확하다. 템포-루바토를 너무 아끼는 게 아닌가 느껴질 정도로 과도하게 절제된 감이 있지만 조금 감상해보면 이내 그런 연주 스타일이 정통 독일 음악의 진면목임을 알게 된다. 생생한 면에서도 발터와는 다르다. 거기다 오케스트라의 투명한 음향과 앙상블의 세련된 정교함도 추가된다.

 

ETERNA!

동독의 도이치 샬플라텐(VEB DEUTSCHE SCHALLPLATTEN BERLIN DDR) 산하에 속한 레이블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이블인 노란 튤립이 만개한 DGG, 하지만 엄연히 한계가 존재한다. 두 가지다.

하나는 연주가의 다양성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향의 지나친 까탈스러움이다. DGG레이블이 스테레오 시대에 들어서서는 카라얀 연주가 거의 70~80%는 차지 할 것이다. 카라얀의 음악적 해석은 녹음 후기로 갈수록 경직되고 인위적 해석으로 치닫게 된다. 나는 이 상황을 두고 음악적 일탈 행위라 칭할 정도다.  

몇 몇 극소수 음반 말고는 좋아하지 않는 지휘자의 대표급. 

DGG의 음향적인 문제로는 내 시스템이 정통 독일 방송장비 이긴 하나 100% 스튜디오와 같은 사운드를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인지 조금은 경질의 음향을 토해 낼 때가 종종 있다. 음량을 크게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몇 몇 음반에서만 그렇다.

 

연주와 음향적 기대감

에떼르나 레이블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 할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첫째로 연주가의 다양성과 양적인 면에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휘자 스위트너를 비롯해서 케겔, 마주르, 콘비츠니, 블롬쉬테트 등이 있고, 첼로의 마이나르디, 샤프란 등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연주가들로 이루어져있다. 들어 보고 싶은 음반이 DGG에 견주어 훨씬 많은 것이다.

둘째로는 에떼르나에서는 음향적인 까탈스러움이란 없다. 그러면서도 엄격한 독일적 사운드를 유지한다. 담백한 독일 사운드의 전형이면서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것, 바로 그 점에서 보면 지금의 내 오디오시스템에서 1%의 불만족을 메꿔줄 것 같다.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점이 있다. 그간 발매된 수많은 에떼르나 음반들은 음향의 패턴에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귀로 느껴지는 음향마저도 공장에서 일정하게 세팅되어 자동으로 찍어낸 듯 어느 음반이나 한결 같은 음향을 내준다. 때로는 녹음이 잘 못 됐나하는 의심이 갈 만 한 음반도,특별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음반도 에떼르나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에떼르나 기술자들은 음향을 조작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음향이 들쭉날쭉 하지 않다는 것은 기기파가 아닌 감상파로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가 음악을 들을 때면 오디오라는 기계장치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아름다운 음악만이 내 가슴과 귓전을 어루만질 뿐이기 때문이다.

그 것도 늘, 변함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