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블라일로프스키의 쇼팽을...

2008. 7. 15. 22:01LP & CD

 

 

칼 체르니(1791-1857)로부터 이어지는 피아노의 계보는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테오도르 레세티츠키(1830~1915)로 이어지고,

그 가운데 레세티츠키는 나중에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수상이 된 이그나츠 얀 파데레프스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의 주인공인 파울 비트겐슈타인, 벤노 모이셰비치, 미에치슬라브 호르쵸프스키,

그리고 오늘 쇼팽을 들은 알렉산더 블라일로프스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인 아르투르 슈나벨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레세티츠키 계열의 피아니즘은 리스트 계열에 견주어 더욱 화려하고 연주가의 자유로운 해석을 존중했기 때문에

강력한 개성을 가진 스타일리스트들이 이 흐름에 포진해있다.

 

내가 서양 고전음악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주 스타일은,

악곡의 부분적인 면보다도 전체적인 음악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음악적 흐름 속에서 변화 되어가는, 그래서 음악적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

피아니시모에서부터 포르티시모에 이르기 까지, 라르고에서 프레스토에 이르기 까지, 

마치 일정간격의 계단을 한발씩 오르듯 점진적인 음악적 발전의 정교함에 매료되는 편이다.

 

나는 블라일로프스키의 쇼팽을 특히 좋아한다.

오늘 감상하게 된 알렉산더 블라일로프스키!

그런 내 취향에 꼭 들어맞다 고나 할까?

터치 하나하나가 빠르고 기복이 심한 부분에서나 이완된 부분에서나 할 것 없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당당한 터치로 유연하게 이어가는 음악적 구축감과 완성도는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가 아닐까 한다.

이는 아르트루 루빈스타인이나 타마슈 바샤리, 이후의 예프게니 키신 등과는 확실히 다른 음악세계이다.

블라일로프스키에서는 아르트루 루빈스타인의 윤기와 낭만적인 서정성을 찾아 볼 수 없으며,

바샤리의 깊고도 아름다운 음향 또한 듣지 못 할 것이고,

키신에서의 투명하고도 예리한 피아니즘 또한 기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블라일로프스키에서는 이러한 음악적 광채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다.

음악적 격정이 흘러넘칠 즈음이라도 그렇다.

마치 언제나 무덤덤한, 무념무상의 유교적 심리를 가진 사람의 연주들 듣는 듯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블라이로프스키의 연주를 심미안을 갖고 여러 번 듣다 보면 이 요소들이 모두 내면 속에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블라일로프스키의 음악적 깊이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쇼팽에 대한 감동을 나에게 선사하게 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 명징한 음향 속에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마음껏 구가하듯, 피아노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비르투오소,

드넓은 공간 속에서 깃 털 하나 걸리적거림이 없는 듯한 프레이징과 음악적 표현력의 무한정한 과시!

아! 이 밤이 세도록 블라일로프스키의 쇼팽을...

아! 이 즐거움이여!

 

오늘 감상한 음반은 영국 발매 cbs BRG72015 모노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