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블라일로프스키, pianist

2021. 11. 26. 11:37연주가

9년 전, 2012년 12월 22일 페북 글입니다.


알렉산더 블라일로프스키의 쇼팽


칼 체르니(1791-1857)로부터 이어지는 피아니스트의 계보는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테오도르 레세티츠키(1830~1915)로 이어지고, 그 가운데 레세티츠키는 나중에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수상이 된 이그나츠 얀 파데레프스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의 주인공인 파울 비트겐슈타인, 벤노 모이셰비치, 미에치슬라브 호르쵸프스키, 그리고 오늘 쇼팽을 들은 알렉산더 블라일로프스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인 아르투르 슈나벨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레세티츠키 계보의 피아니즘은 리스트 계보에 견주어 더욱 화려하고 연주가의 자유로운 해석을 존중했기 때문에 강력한 개성을 가진 스타일리스트들이 이 흐름에 포진해있다.

내가 좋아하는 연주 스타일은 악곡의 부분적인 면보다 전체적인 완성도를 중시하는 해석이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변화 되어가는 과정과,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까지, 피아니시모에서 부터 포르티시모에 이르기 까지, 라르고에서 프레스토에 이르기 까지, 마치 일정간격의 계단을 한발씩 오르듯 예술적 희열 상승의 정교함에 매료되는 편이다.

나는 블라일로프스키가 연주한 쇼팽을 특히 좋아한다. 오늘 감상하는 음반에는 그런 내 취향에 꼭 들어맞는 연주가 수록되어 있다.

터치 하나 하나가 빠르고 기복이 심한 부분이나 이완된 부분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당당한 터치로 유연하게 이어가는 구축감과 완성도는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루빈스타인이나 바샤리, 이후의 키신 등과는 확실히 다른 음악세계이다.

블라일로프스키에서는 루빈스타인의 윤기와 낭만적 서정성을 찾아 볼 수 없으며, 바샤리의 깊고도 아름다운 음향 또한 듣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키신에서의 투명하고도 예리한 파괴력도 기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블라일로프스키에서는 이러한 음악적 광채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음악적 격정이 흘러넘칠 즈음이라도 그렇다.

마치 언제나 무덤덤한, 다시말해 무념무상의 유교적 심리를 가진 사람의 연주를 듣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블라일로프스키 연주를 심미안을 갖고 듣다 보면 이 요소들이 모두 내면에 존재함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러한 블라일로프스키의 음악적 깊이는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변함없는 감동을 전달받게 되는 까닭이다.

그 명징한 음향 속에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마음껏 구가하듯, 피아노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비르투오소, 드넓은 공간 속에서 깃 털 하나 걸릴 것 없는 듯한 프레이징과 표현력의 무한정한 과시!

이 밤이 세도록 블라일로프스키의 쇼팽을 듣고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감상한 음반은 영국 발매 cbs BRG72015 모노음반이다.

2008. 7. 15 밤 10시
시골집 음악감상실
•An die Mus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