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0. 17:41ㆍ신문&방송기사
경북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핵폐기물 처분장 모습. 사진은 2015년 7월 13일 처분장이 가동을 시작했을 때로, 폐기물로 가득 찬 콘크리트 덩어리가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모습이다. 이날 처음 처분된 폐기물은 경북 울진 원전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곳에서 적어도 300년 이상 보관될 예정이다. 경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가 잘 모르는 핵시설 사고가 있다. 2014년 밸런타인데이에 미국 뉴멕시코 사용후 핵폐기물 저장 시설에서 발생한 사고다.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 시설인 지하 700m 동굴에서 커다란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이 폭발은 미국 역사상 핵시설 최대 사후처리 비용인 2조원의 손실을 초래했다. 잘 알려진 1979년 쓰리 마일 아일랜드(TMI) 원전 2호기 노심 융용 사고 때보다 커다란 비용이 들어갔다.
영구 처분장을 짓거나 부지를 확보한 스웨덴과 핀란드를 제외하고 미국, 일본, 프랑스, 한국 등은 모두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문제가 아주 심각한 영국 상황을 보자. 과거 영국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이 어려워 미국과 ‘빅딜’을 하기도 했었다. 700㎏짜리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으로 보내고, 미국은 영국에 의료용 핵물질을 제공하는 물물교환이었다.
영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는 드문드문 핵폐기물 영구처분 용지 찾기를 시도했다. 정부 주도의 이런 추진 방식을 ‘DAD’라고 한다. 정부가 결정하고(Decide), 선언하고(Announce) 방어한다(Defend)는 뜻이다. 정부 주도의 하향식 추진 방식은 지역사회의 반발을 불렀다. 이런 ‘숨은그림찾기’에 맞서 영국 지역사회는 때마다 반발했고 그 결과 영국 정부는 매번 부지 선정을 포기해 왔다. 고농도 핵처리 시설이 밀집한 잉글랜드 셀라필드에서조차 2013년 캄브리아 지역의회는 주정부가 중앙정부에 폐기물 처리장 유치 신청을 하려는 것을 불법화(의회에서 관련 안건을 부결)했다.
셀라필드 원자력 단지는 유럽에서 방사능 물질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영국은 지난 70년 동안 핵무기와 핵발전소에서 나온 고준위 핵폐기물을 관련 시설이 노후화된 셀라필드에 대책 없이 쌓아왔다. 이 때문에 생겨난 운영비는 연간 1.5조원이다. 영국 정부는 이 비용 때문에 커다란 압박을 받고 있다. 더욱이 셀라필드 단지에는 140톤 규모의 폐플루토늄까지 보관돼 있다. 이 플루토늄이 핵무기가 되어 쓰였다면 인류를 여러 번 소멸시켰을 것이다. 처리가 난망하자 영국 정부 산하 원전해체 전담기관 NDA가 나서 기존 원전에서 이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원전 운영자가 거절했다. 폐플루토늄 관리와 이를 활용한 발전소 운전이 굉장히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에너지상업위원회는 35년째 해답이 없는 영구처분 문제를 미루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사설업자의 사용후 핵폐기물 저장 시설 운영 허용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한때 땅이 넓은 특정 나라가 자진해서 전 세계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수용하는 방안, 예를 들어 서호주 사막 활용론 같은 것도 거론됐으나 이는 ‘이상’에 그쳤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한 국가일 때 이 방안이 거론됐지만, 두 나라가 독립하는 소위 ‘벨벳 이혼’으로 무산됐다.
궁극적으로는 핵변환을 통해 장수명 핵의 반감기를 줄이고 폐기물 부피를 줄이는 방식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고속 원자로나 가속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영국에서 보듯이 재처리 공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정이 매우 복잡하고, 그 복잡성 때문에 사고도 잦다. 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고 효율은 낮아 경제성도 없다. 막대한 비용과 위험마저 감수해야 하는 핵변환이 실현될 때까지 사용후 핵폐기물 중간 저장 시설에 기대어 원전 건설을 지속하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다.
현재로써는 ‘심층 처분’ 외에는 달리 현실적인 핵폐기물 처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많다. 당장 저장 시설의 땅속 깊이부터 논란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하 500m 아래에 폐기물을 영구 처분하는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고 최근에는 지하 5㎞에 저장하는 초 심층 처분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원전이 해체되어도 저장 시설은 남는다는 문제도 있다.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조는 삼엄한 경비 속에 몇십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무덤을 기다리며 폐쇄되어 있어야 한다. 이 저장조 관리에는 물론 계속 돈이 들어간다.
원전 대국들의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영국 힝클리 포인트, 프랑스 프라망빌, 핀란드 올키킬루토, 미국 브이씨 써머와 보글 등은 중단 혹은 중단 위기다. 수명 전 조기 폐로, 일본의 원전 재가동 논란 등이 해외 주요 언론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6년 일본 국민은 원전의 완전 폐기를 73%가 찬성하고 원전의 재가동은 57%가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각국의 모습은 한국의 가까운 미래다. 핵폐기물은 원전을 확대해 온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원전을 유치한 지방자치단체 등 지역사회에 있을까? 아니다. 원전 건설을 ‘DAD’로 추진한 국가와 이를 인정한 국민 모두에게 있다. 사용후 핵폐기물 영구 처분장 부지 결정은 특정 지역을 지목하기 이전에, 지역을 불문하고 국민 전체에 폭넓게 물어보는 것이 순서이다. 원전은 인정하고 폐기물은 부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일본 정부도 핵 처분 지도를 ‘DAD’로 정했다가 몰매를 맞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시설을 모두 보유한 원자력 원천 기술국조차 사용후핵연료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정치적 해법이란 것은 없다. 궁극적으로 핵폐기물을 수용하려고 나설 지역도 없을 것이다. 원전을 지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이유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원자력 에너지시스템공학과)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10353.html#_adtel#csidx3824fff54a752f3b3ed6ea9cf6492c0
'신문&방송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UN의 대북제재결의를 반대합니다. (0) | 2017.09.13 |
---|---|
눈부신 신재생에너지-박종운 교수 (0) | 2017.09.13 |
사드-대통령 대국민 메시지에 대한 긴급 논평 (0) | 2017.09.10 |
원전 ‘안전신화’, 이제는 벗어나야 (0) | 2017.09.10 |
탈핵 대안-장다울 파파이스 유투브 (0) | 2017.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