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0. 00:04ㆍ신문&방송기사
[김해창 교수의 에너지전환 이야기] 9. 원전 ‘안전신화’, 이제는 벗어나야
“신고리5·6호기, 원전업계 이익보다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7.09.08 16:36
원전업계·학계 전문가들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한다. 요즘 신고리5·6호기 백지화 공론화를 놓고 하는 TV토론을 보면 찬핵 진영 전문가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결같이 ‘체르노빌·후쿠시마원전 참사’는 남의 나라이야기에 불과한듯 이야기하며 아직도 ‘절대안전’을 강조한다.
그런 말은 적어도 후쿠시마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통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원전업계나 학계 그리고 원전당국이 말하는 소위 ‘안전신화’는 후쿠시마원전참사에서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2004년 우리나라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해당하는 일본원자력보안원이 일본 원전에 대한 확률론적 안전성평가(PSA)에서 1억년·원자로에 1회 격납용기 파손사고 확률로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 뒤인 2011년 3월 11일 1억년·원자로에 한번 발생할 확률의 사고가 후쿠시마원전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월성1호기 계속운전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월성1호기의 확률론적 안전성평가는 4000만년·원자로에 1회 격납용기 파손 발생확률이라고 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원전안전 설계기준에 따른 원전사고 확률은 흔히 10만 분의 1, 또는 100만 분의 1로 보고 있다. 기관에 따라 다소 들쭉날쭉하지만 오십보 백보로 모두 ‘원전사고가 날 확률은 극히 낮다’는 이야기였다.
일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원전사고가 나기 전까지도 원전에서 방사능누출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1000만분의 1’이라고 했다. 또한 설령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연료펠릿 고형화, 연료피복관으로 봉쇄, 원자로압력용기, 원자로격납용기, 원자로 철제콘크리트 건조물의 ‘5중벽’이 있어 방사능누출사고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것을 ‘원전 안전신화’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신화’는 2011년 3월 11일 이후 한꺼번에 무너졌다. 이른바 ‘안전신화의 붕괴’이다.
후쿠시마 원전. EPA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 연구소인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가 내놓은 핵발전소의 사고확률 계산은 전 세계 440개의 민간 원자로를 기준으로 사고등급 7에 해당하는 중대 핵발전소사고가 지난 60년의 핵발전 역사에서 6건(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원전사고 원자로수)였으며, 원자로 수로 볼 때 6기의 원전이 폭발한 것을 토대로 앞으로 지구상에서 원전이 중대사고를 일으킬 확률을 수십년에 1회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김기진 외, 2014).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난 8월 23일 국회 탈원전정책 토론회 ‘신고리 5·6호기 건설, 무엇이 문제인가’의 발제문에서 “IAEA의 원전 한 기당 10만 년에 1회 사고발생 빈도라는 것은 IAEA의 개별 원전 목표치이며 실제 전 세계 원전 대형사고의 실적치(발생횟수)가 아니다”라며 “실제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3기까지 포함한 것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경우 원전이 25기 보유하고 있으므로 20년에 1회라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미디어오늘, 2017.8.24).
이러한 ‘원전 안전신화’의 허상은 이미 일본의 선각자가 지적을 했음에도 원전당국은 이를 철저히 무시해왔다. 히로세 다카시는 체르노빌원전사고 발생 1년 뒤인 1987년 4월 ‘위험한 이야기-체르노빌과 일본의 운명(危險な話 チェルノブイリと日本の運命, 한국어판 ‘원전을 멈춰라’, 1990)’이라는 책을 통해 후쿠시마원전사고의 발생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
히로세 다카시의 저서 ‘원전을 멈춰라’ 표지.
‘지금 미야기현 오나가와원전 바로 이웃인 후쿠시마현에는 자그마치 10기가 있죠. 여기서 해일이 일어나 해수가 멀리 빠져나가면 11기가 함께 멜트다운(노심용융)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말기적인 사태로 몰아넣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데는 일본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일본에서는 사고가 없기를 기도하는 사람 또는 대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한낱 환상이라는 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1년 전까지 소련사람들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체르노빌의 체험으로 보아 명백합니다. 이 사고는 우리 일본인이 자신을 향해서 보내는 최후통첩이 될 것입니다.’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일어나기 24년에 한 이야기이다.
후쿠시마원전사고 발생 2년 전인 2009년에는 일본 지진학의 대가인 이시하시 가쓰히코(石橋克彦) 고베대 명예교수가 ‘원전이 지진으로 대형사고를 일으켜, 지진재해와 방사능재해가 복합 증폭해 발생할 파국적 재해의 현실적 가능성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원전당국은 이를 애써 무시했고, 2010년 6월 후쿠시마2호기에서 오작동으로 전원차단 및 수위저하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당시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건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도쿄전력 원전전문가팀도 2007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후쿠시마원전을 모델로 쓰나미 발생이 원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발표를 한 사실이 있다. 당시 ‘후쿠시마원전에 9m 이상의 쓰나미가 올 확률은 약 1%, 13m 이상의 대쓰나미가 올 확률이 0.1%’라고 발표했는데 실제 쓰나미의 높이는 14~15m였다. 후쿠시마원전은 제대로 대비를 하지 않아 대참사를 당한 반면, 인근 미야기현의 도호쿠전력 오나가원전의 경우 해수면에서 약 15m 높이의 방벽을 확보했기에 같은 쓰나미에도 원자로 3기 모두 자동정지 냉각상태로 무사했다(金子勝,2011).
원전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소위 ‘베크(Beck)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베크의 법칙이란 1965년 미국의 베크박사가 1964년까지 과거 21년간 미국 원전 246기의 원자로 및 원전 사고기록을 분석해 발표한 논문의 결론을 말한다. “첫째, 원전사고의 경우 상상 가능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둘째, 사고 시에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사고는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일어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상상 가능한 사고’란 원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사고를 말한다.” 이처럼 안전은 안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특히 원전의 경우 예상할 수 없는 사고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원전업계·학계 전문가들 중에는 “일본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신화’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후쿠시마원전사고 후속대책으로는 고리원전 일대 방수벽을 기존의 6m에서 10m로 높였다. 원전사고는 지진 쓰나미만 막으면 되는 것일까.
탈원전학자인 오쿠노 고야(荻野晃也) 전 교토대 공학부 교수는 “원전 추진파의 생각이야말로 오히려 희망적 관측으로 시종일관하고 있으며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011년 9월 도쿄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원전 추진파들이 철저히 베크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첫째, 그러한 사고가 일어날 리가 없다. 둘째,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리가 없다. 어느 하나는 작동할 것이다. 셋째, 있을 수 있는 일은 모두 고려하고 있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쿠노 전 교수는 핵분열형 원자로는 제어가 곤란하며 사고가 일어나면 그 영향의 심각성과 지리적 광범위성은 매우 크고 ‘사고는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일어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기에’ 지난번 후쿠시마원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비록 안전대책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 뒤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핵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당연히 가장 많은 원전이 가동되고 있고, 특히 노후원전이 많은 고리일대일 수밖에 없다. 당초 30년 설계수명연한을 10년 더 연장한 것도 모라자 또 다시 10년을 연장하려던 박근혜 정부의 원전정책에 대해 2015년 부산 울산 경남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이뤄낸 결과가 지난 6월 19일의 ‘고리1호기 영구정지’이다. 이러한 ‘원전 안전 신화의 붕괴’에 대해 한마디의 반성도 없이 아직도 TV토론에서 원전사고 ‘10만분의 1’ ‘100만분의 1’ 운운하는 친원전 학자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믿어달라며, ‘비전문가’인 국민들은 에너지 선택에 대해 판단할 자격이 없다며 주권자이자 소비자인 국민을 공론화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원전 이전에 안전!’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 국민들도 이러한 소위 전문가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우리의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는 바로 주권자이자 소비자인 우리 국민의 지혜와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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