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빨리 흐른다, 베토벤이 원한 속도로…

2011. 12. 26. 07:57서양음악

[베토벤 지시보다 느렸던 연주 속도, 왜 점점 빨라지나]
'운명' 교향곡 빠르기… 베토벤 악보엔 2분음표=108
70년대 이전 번스타인 80, 70년대 이후 클라이버는 100
악보 개량·원전연주 확산으로 메트로놈 속도 맞춘 연주 늘어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좌우로 움직이는 바늘이 일정한 박자를 알려주는 메트로놈(Metronome). 1816년의 어느 날, 이 박자 측정기를 처음 본 46세의 베토벤은 즉시 자신의 교향곡 악보에 메트로놈 빠르기를 숫자로 적어넣었다. 이미 작곡을 끝낸 곡도 다시 꺼냈다. 베토벤은 메트로놈 빠르기 숫자를 구체적으로 표시한 첫 번째 작곡가였다. 메트로놈이 나오기 이전, 하이든·모차르트·바흐·헨델과 같은 작곡가들은 자기가 원하는 빠르기를 알레그로(빠르게), 아다지오(느리게) 같은 추상적인 어휘로 표현했다. 베토벤은 당시 귀가 멀어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런 추상적인 단어를 쓰기 싫어했다.

↑ [조선일보]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가 작년 10월부터 매월 셋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선보이고 있는 'Part3 베토벤'은 베토벤이 그토록 원한 템포에 맞춰 그의 교향곡 전 악장을 연주하겠다는 목표로 열리고 있는 기획 음악회다. 지휘와 해설을 맡은 김대진(50) 한예종 교수는 "베토벤은 원하는 걸 악보에 또렷하게 밝혀놓은 '주문이 많은' 작곡가"라고 했다.

문제는 베토벤이 정한 템포가 너무 빠르다는 것. 김 교수가 말했다. "교향곡 8번 1악장의 템포는 4분음표(♩)를 기준으로 207이에요. 사람의 심장박동수와 가장 유사한 템포가 88인 걸 감안하면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빠른 거지요. 그나마 근접하게 연주한 사람은 160 빠르기로 한 번스타인이고, 길렌은 무조건 베토벤 지시를 따라서 하는 사람인데도 174로 했어요."

베토벤 생존 당시부터 연주 템포는 악보 지시보다 느린 것이 일반적이었고, 사후에는 속도가 더 느려졌다. 첫 번째 원인은 공연장과 교향악단의 대형화. 일반 가정의 거실을 벗어나 수백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대형 공간에서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연주를 하다 보니 연주의 정확성과 질을 높이기 위해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18세기 말~19세기 중엽 유럽을 풍미한 낭만주의도 영향을 미쳤다. 개인의 상상력과 내면의 감성을 자유롭게 드러냈던 이 시대에 베토벤의 메트로놈 지시는 완전히 무시됐다.

하지만 원전연주가 확산된 1980년대부터는 메트로놈 속도를 지키려는 연주들이 속속 등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 기존 악보의 오류를 수정한 베렌라이터판 악보가 보급되면서 빠른 연주가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교향곡 9번 '합창'의 경우 베토벤의 지시는 2분음표를 기준으로 88.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카라얀은 72, 토스카니니는 76, 심지어 푸르트벵글러는 52까지 내려갈 정도로 느렸다. 베토벤 지시대로 1악장만 연주하면 13분, 푸르트뱅글러 연주는 17분으로 무려 4분이나 차이가 났다. 5번 교향곡 '운명' 역시 베토벤의 지시는 108로 브루노 발터는 92, 번스타인은 80이었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아바도는 96,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100에 가까울 정도로 빨라졌다.

김대진 교수는 "템포를 높이면 빠르면서도 정확히 연주해야 해 힘들지만 위대한 작곡가의 의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점에서 값진 통증"이라고 했다. 'Part3 베토벤'의 올해 도전은 다음 달 18일 오전 11시 교향곡 4번 연주를 시작으로 오는 8월까지 계속된다.

☞메트로놈

음악의 박자를 측정하거나 템포를 나타내는 기구. 1812년 네덜란드 의 빈켈이 발명하고, 1816년에 독일 의 멜첼이 개량해서 특허를 받았다. 시계추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약 15㎝ 흔들이 아래쪽 끝에 달려 있는 추(錘)가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어 박(拍)을 새기고 벨을 울려 박자를 알린다.

출처/원문 보기 :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26&newsid=20120105031810304&p=cho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