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낮 햇살 따스한 창가에서 오베르뉴의 노래를 들으면~

2010. 12. 26. 15:28An die Musik

 

어린 시절 난 이른바 달동네에 살았다.

그 달동네가 내 어린 시절을 더없이 풍요롭게 만들어 준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절마다 동네 형들과 모여 갖가지 재미난 일들을 벌였다.

여름이면 마을에서 20~30분 쯤 걸어 감천바다를 갔다.

거기에서 게니 고동, 미역을 따며 시간 가는줄 모르게 놀았다.

여치를 잡아 집을 만들어 수박껍질을 넣어주고 집 처마에 달아놓으면 여치는 지칠줄 모르고 노래를 해댄다.

가을이면 마을 애들 열에서 스무명 가까이 모여 형들의 지휘아래 대나무를 깎아 방패연을 만들고, 사기그릇 조각을 빻아 넣은 풀을 끓여 연실에 사기를 먹이는 일대 공사가 시작되곤 했다.

해가 지면 좁디 좁고 미로 같은 마을 골목길을 이용해 전쟁놀이도 했다.

그 때 나는 주로 작전 맡았는데, 적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할 작전을 구사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낮에는 나무로 깎은 칼과 기관총으로 무장해 전쟁놀이를 한다.

그 어릴 때 난 직선형 칼-로마 군인들이 쓰는 것과 같은-을 실제와 비슷하게 어렵사리 깎아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날이 추웠던 겨울, 낮에 동네 어귀 햇살이 잘드는 구석에 모여 쭈그리고 않아 친구들과 구슬따먹기나 딱지치기를 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꺼내 듣고 있는 캉틀루브의 오베르뉴의 노래가 이런 분위기랑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 따스한 시골마을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있는 평화롭고 여유 넘치는 풍경...

프랑스 시골마을인 오베르뉴 지방의 민요를 모아 캉틀루브가 정리한 곡들인데,

사진을 검색해 보니 내 어린시절의 달동내랑은 다르지만 한가로운 시골 마을은 분위기가 통하는 모습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곡들을 내로라하는 몇몇 성악가들이 녹음했지만 내가 듣는 이 네타니아 다브라스 만큼 내 고향 따스한 마을 내음이 풍기지는 않았다. 세련되고 성량이 풍부해서 수준 높은 성악 실력은 좋을지 몰라도 시골스러운 순박하고 청순한 분위기는 이 네타니아 다브라드가 단연 앞서지 않을까 싶다.

우리 가곡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조수미의 녹음 보다도 남덕우의 음반에 손이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