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칼럼] 천안함의 진실과 ‘북한 주적론’

2010. 6. 21. 11:10괜찮은 글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라.” 고대 로마 시대의 학자이면서 정치가인 키케로가 남긴 반어법 수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에 ‘천안함 이슈리포트’를 보낸 참여연대를 향해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반응을 보인 정운찬 총리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한 나라의 총리라면 천안함과 같은 국가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모든 진실을 밝힐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으며 정상국가의 총리라면 응당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참여연대가 서한에서 지적한 조사결과의 8가지 의문점과 6가지 문제점에 관해 논리로 반박하는 대신 인신을 공격하는 쪽을 택했다. 그 자신, 그가 모시는 대통령, 그와 한패인 수구언론의 사주들 중 한 사람이라도 병역 의무를 필했더라면 그의 발언이 조금은 덜 몰염치했을까?

천안함 사건은 발생부터 조사결과 발표까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그래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참여연대만이 아니며, “0.001%의 설득이 안 된다”는 동양학자 김용옥 박사의 말에 공감하는 사회구성원이 한둘이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한겨레21> 최근호에서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는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 내놓은 흡착물질은 폭발의 결과물로 볼 수 없다”, “모래와 소금밖에 없다”고 증언하여 어뢰 폭발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모색과 행동은 사라지고 정치공학과 마녀사냥만 난무한다. 한국의 이른바 국격의 수준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평화적 해결”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익단체들과 수구언론들에게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다시금 프리모 레비의 말을 되새기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괴물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아 그리 위험하지 않다. 실제로 위험한 것은 의문을 품지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평범한 기계적 인간들이다.”

이명박 정권 후기로 들어서면서 극우반공주의와 이분법적 냉전 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국가보안법이 다시금 활개를 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이미 참여연대뿐만 아니라 의문을 품는 모든 이들에게 ‘이적행위’, ‘매국노’의 딱지를 붙이고 있으며 정치검찰을 다시금 동원할 태세다. 특히 ‘북한 주적론’을 더 강화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드러난 정부와 군의 총체적 무능에 대한 비판을 피해 가려는 것이며, 6·2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은 이명박 정권의 위기의식이 그들의 무능과 결합하여 과거의 손쉬운 통치방식에 집착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개탄하듯이 남북관계는 20여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해양과 대륙을 동시에 만나는 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에서 최악의 형태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분할선으로서 분단을 고착시키는 이론의 하나인 ‘북한 주적론’은 사실상 한국이 교전권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구체성이 없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을 기해 이명박 정권과 수구세력은 ‘북한 주적론’을 강화하면서 미국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권을 환수할 시기를 더 연기할 것을 주장한다. ‘북한 주적론’은 전시작전권을 환수했을 때라야 그 구체성이 있음에도 ‘북한 주적론’을 강화하는 한편 전시작전권 환수의 연기를 주장하는 모순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북한을 중국 대륙에 밀어붙여 북한의 중국 종속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내부로 향한 칼날로 작용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의문을 품고 진실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이적행위로 몰아붙일 수 있는 배경이 다른 데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천안함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진실은 스스로 말한다고 하지만 때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모두 진실 찾기에 나서야겠는데 정운찬 총리에게 학자적 양심에 마지막으로 호소해보는 것은 무망한 기대일까.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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