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4. 14:16ㆍ괜찮은 글
[2일 투표장에 무슨 일이]
“미니스커트와 운동복 차림 젊은이들 모여들어”
“투표일 지인들에 독려전화 스무통 넘게 했다”
“정치무관심이 ‘쿨하다’→’개념없다’로 바뀐듯”
“촛불 이후 대학입학 09학번부터 진지해진 것”
» 6·2 지방선거 개표에서 야권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3일 새벽 젊은 세대 등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모여 촛불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이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만날 시간과 장소를 서로 알렸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
지난 2일 서울 강북구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선거요원으로 참여한 공무원 김아무개(32)씨는 “오후 2시를 넘어서며 지난 선거와는 다른 흐름을 분명히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무렵부터 미니스커트와 편한 운동복 차림의 20대 젊은이들이 하나둘 투표장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한 여성은 표를 줄 후보의 이름을 꼼꼼히 적어 왔고, 동네 친구로 보이는 20대 남성들은 투표장 안에서 낄낄거리다 선거요원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김씨는 “3일 아침에 출근해 동료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해 놀랐다”며 “모두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한 편의 드라마가 촬영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확한 세대별 투표율을 집계하려면 시일이 걸리지만, 투표 독려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였던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 ‘돌풍’의 배경으로 20~30대의 투표율을 꼽는다.
실제로 투표 당일 20~30대의 움직임은 과거에 비해 분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신대 기독교교육학 석사과정의 맹드보라(25)씨는 투표를 하기 위해 ‘당일치기’로 전북 군산까지 다녀왔다. 그를 멀리 군산으로 이끈 것은 “대통령의 소통의 방식”이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를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하며 너무 가볍게 본다는 게 맹씨의 생각이다.
취업준비생 조아무개(26)씨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젊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대통령의 사고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조씨는 투표 당일 지인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전화를 스무 통 넘게 했다고 한다.
20대들의 모임인 ‘청년 이그나이트’의 김선경(27) 대표도 오전에 투표를 마친 뒤 40~50명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단체 문자를 남겼다. 그는 “20대들의 투표율이 높아지는 데는 트위터나 아이폰 등 정보기술 기기의 영향도 엄청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석(26·부경대 신문방송학4)씨도 “휴대전화 인증샷 같은 것을 통해 투표가 딱딱한 이미지에서 재밌는 행사로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인 것일까.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악화된 청년실업과 반값 등록금 공약 미이행 등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한 젊은층의 반감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한민(26) 2010 대학생유권자연대 상임대표는 '20대 코드'라 부를 수 있는 좀더 심리적인 부분에 주목했다. 손씨는 "몇년 전만 해도 정치나 사회에 무관심한 애들에 대해 '쿨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개념이 없다'는 쪽으로 평가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변곡점은 2008년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다. 그는 "촛불 이후 대학에 입학한 '09학번'부터는 확실히 사회를 보는 눈이 더 진지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대체로 비슷하다. 우석훈 2.1연구소장도 “4대강과 같은 이슈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사실 20대의 감성을 많이 건드리는 이슈”라며 “한나라당은 북풍몰이와 전교조 죽이기에 골몰했을 뿐, 20대들이 원하는 정책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초·중등교육을 받은 20대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감성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짚었다.
젊은 세대들과 친숙한 이들의 지원사격도 한몫을 했다. 김제동, 이외수, 김미화씨 등 유명인사들은 자신의 트위터에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글들을 하루 종일 쏟아냈다.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씨는 “난 지금 투표하고 명수형 라됴 가는 중ㅋ. 여러분 피곤하고 귀찮아도 투표는 5분도 안 걸리니 꼭 하삼ㅋ. 나 공익광고협의회 직원 느낌이네 ㅋㅋ”라고 적었다.
우석훈 소장은 “단정하긴 이르지만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투표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진행한 20대의 역동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관계자는 “20~30대의 투표 참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며 “다만, 세대별 투표율과 선거 결과의 상관관계는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길윤형 김민경 기자 charisma@hani.co.kr
출처/원문 보기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239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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