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19. 16:51ㆍ이런저런...
노보글마당․가족글
고등어
박향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눈부시게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과 빛고운 햇살, 과연 봄의 절정은 오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꽃이 아니라 5월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그 색깔이 변해가는 산의 모습에 진한 감동을 받곤 한다. 시인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은 얼어붙은 땅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꽁꽁 언 땅에서 뾰족이 고개를 내밀어야만 하는 새싹의 의지를 생각하면 정말 4월은 잔인하다. 하지만 금방 난 연둣빛 새잎들은 햇살을 받고, 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점점 색깔이 짙어져 간다. 창 밖으로 보이는 먼 산의 진초록에 둘러 싸여 있는 연둣빛 나무들을 보면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저 산도 시리도록 푸른 녹음으로 바뀌어져 갈 것이다. 아이들을 새싹이라고 한다. 가끔 아이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언제 커서 짙은 녹색의 나무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만 4년 동안 시골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이 15년이 넘어섰지만 나는 아직도 시골에서의 만 4년이 내 교사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해마다 5월이 되어 스승의 날이 되면 고마운 일도 많지만, 참으로 기분이 상하게 되는 일도 많다.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데다가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수군거리는 것까지, 촌지에 상품권에 참으로 모든 교사들을 도둑으로 몰아대는 통에 교직 자체에 회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흑백 TV속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다.
스승의 날만 되면 색종이를 오려서 색종이 비를 만든다. 폭죽이나 눈 스프레이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 흔한 풍선 하나 달지 않았지만 교실문을 열면 쏟아지는 색종이 비는 달콤한 연인의 밀어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엄마 스타킹 살짝 훔쳐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 나에게 선물을 해주던 아이들. 몇 되지 않는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우레처럼 들리던 때였다.
아마 그 날도 아이들이 뿌려준 색종이 몇 개가 내 머리 위에 눈처럼 흩어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앉은 교사용 자리는 창문 옆이었는데, 1층이었던지라 고개만 돌리면 지나가는 다른 아이들과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위치였다. 박수를 치며 한참을 웃고 있는 데 갑자기 ‘선생님’ 하고 변성기에 들어선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3학년쯤밖에 안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둘이서 창 밖에서 흙을 발로 차며 서성대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작년에 결국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쌍둥이 형제였다. 한 학년에 두 반, 한 반에 스물 일곱명. 몇 명 되지도 않은 아이들이라 니 반, 내 반 할 것 없이 모르는 아이가 없었다. 동생은 내 반이었지만, 쌍둥이형은 바로 옆반이었다. 형은 이웃동네에 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별나고 부랑끼가 많은 아이였다. 한겨울에 내복도 입고 다니지 않는 것을 보고 내복을 사주었더니 동생 것까지 내 앞에 던져놓고 갈 정도로 자존심도 강한 아이였다. 엄마는 없고, 아버지는 감옥에 가 있다고 했다. 잘 곳이 없어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아무 집에서 자기도 하고, 여름이면 눕는 곳이 집이라 했다. 학교에 잘 오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우리반 아이가 학교에 나타나면 나는 형 몰래 먹을 것을 사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게 사랑을 베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얼굴을 잊을 정도로 아주 가끔씩 학교에 나타났고, 난 결국 그 아이들을 졸업식장에서조차 볼 수가 없었다.
“너희들….”
“선생님 이거예….”
동생이 내민 것은 검은 비닐봉지였다. 동생이 나에게 그것을 내밀 동안에도 형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애꿎은 땅바닥만 툭툭 차고 있었다.
“이게 뭐니?”
“선생님 자취한다 아입니꺼. 이것 잡수라고 힝아가….”
“응, 그래 고맙다. 그래 너희들 지금 어디 있니? 도대체 왜 졸업식에도 안 온거야?”
아이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지금예. 우리 돈 벌어예.”
“어디 있는데?”
“우리 부산에 있어예. 중국집인데예. 태양각이라꼬…”
그 때, 햇빛 때문만은 아닌 듯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고 나를 외면한 채, 형이 동생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자, 새꺄.”
“얘들아, 자 잠깐만.”
차비라도 손에 쥐어주려고 가방을 뒤지는 사이에 아이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 버리고 말았다. 뒤쫓아갔지만 유난히 조그만했던 아이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흔적도 없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을 알고 난 후 처음으로 그렇게 긴 대화를 해 보았을 것이다. 나는 햇살만 가득 쏟아져내린 운동장만 망연자실 바라보다가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에 들어서서야 나는 아이가 놓고 간 비닐봉지를 펼쳐 보았다. 펼치기도 전에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고등어였다. 간고등어도 아닌 생고등어는 오월의 햇살에 지쳐 이미 눈동자가 쾡하니 들어가 있고, 살이 물러지고 있었다. 어떻게 고등어를 살 생각을 다했을까. 아이는 보통 초등학생과는 다른 선물, 좀 더 어른스러운 선물로 고등어를 골랐을 것이다. 손수건 따위의 유치한 선물로는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다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준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의 가슴 속에 나조차 잊은, 무심코 지나가는 내 손길 하나가 깊은 사랑의 자국으로 남아 있었을까.
아이는 지금쯤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는 멋진 나무로 자랐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시장에서 고등어를 고르고, 돈을 치렀을 그 아이들의 작은 손놀림을 생각하면 나는 그 나무가 나에게 드리운 짙고 넓은 그늘을 느낀다.
그 날 저녁, 고등어찌게는 형편없는 내 음식솜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가 차게 맛이 있었다.
박 향
소설가, 사동초등학교 교사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작품집 ‘영화 세 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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