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천안함 도박’ / 정석구

2010. 5. 26. 07:50괜찮은 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따지는 건 이제 무의미해져 버린 것 같다. 북한이 ‘검열단 파견’을 주장하고, 남쪽에서도 조사결과를 못 믿겠다는 목소리가 일부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어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천안함 침몰은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이라고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스스로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침몰 원인에 관계없이 천안함 사건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건 이명박 정권의 속성상 이미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 정권은 지난 10년 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며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겠다고 나섰다. 이 정권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됐지만 쉽게 말해 ‘핵 포기하고 고개 숙이고 들어오면 배부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북한 동포는 언젠가 서로 보듬고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야 할 같은 핏줄이라는 민족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주변 4대 강국과의 균형외교를 통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뤄나가겠다는 역사의식은 더더욱 없다. 소위 이 나라의 주류라고 자칭하는 보수우익세력의 대북의식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수준이다.

이런 식의 대북 강경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그동안 너무도 많이 봐 왔다.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박정희 정권과 안보를 정권 장악에 활용했던 전두환 정권 아래서 남북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당시 북한이 자행했던 1·21사태나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858기 폭파 같은 도발을 옹호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남북관계란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식의 대북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북한의 대응도 당연히 달라진다. 보수우익세력들은 이번 천안함 사건이 ‘퍼주기 10년’의 결과라고 하는데,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명백한 왜곡이다. 물론 퍼준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대신 군사적 긴장 완화나 경협 확대와 같은 현실적인 이득을 챙겼다. 정확히 말하면 ‘퍼주고 퍼오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퍼왔던’ 측면은 애써 무시하고 ‘퍼주기’만 부각시키며 이를 차단했다. 당연히 그동안 ‘퍼오던’ 남북 긴장 완화와 경제협력 등은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천안함 사건은 이런 대북 강경정책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는 보수우익세력들이 강경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북한을 계속 압박하면 당분간은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더라도 머잖아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가설이 얼마나 실현가능성이 있느냐이다. 이 정권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도 이런 압박에 동참시켜 북한을 완전 고립시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정부가 국제외교에 온갖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으로서도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중국을 설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한 가지는 북한 정권이 내부 분열을 거쳐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다. 이것도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은 외부 압박이 강해질수록 더욱 강경해지는, 상대하기 아주 까다로운 국가다.

결국 이 정권은 그동안 번번이 실패했던 비현실적인 가설을 전제로 대북 압박정책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서해와 휴전선에서 군사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긴장 국면이 길어질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돼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북한이 손들고 나오기 전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정부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이런 위험을 안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민족의 장래를 볼모로 ‘천안함 도박’을 시작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정석구 선임논설위원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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