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매력, 턴테이블

2010. 4. 13. 15:44오디오&AV

오늘의 클래식

 

  • 턴테이블
1877년 에디슨이 인간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 축음기를 발명하고 1948년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처음으로 33 1/3 회전 LP를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아날로그는 거의 1세기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와 함께 해왔다. 하지만 1984년 CD라는 디지털 소스가 등장하며 LP는 마치 과거의 유물로 남는 듯했고, CD는 사용상의 편리함과 무한 복제라는 장점을 무기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대중은 턴테이블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LP와 턴테이블은 이제 더 이상 음악 애호가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CD는 음악을 전달하는 메인 포맷으로 활약한 지 채 30년도 안 되어 자신 또한 MP3라는 포맷의 공격을 못 이기고 급격히 시장을 빼앗겼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일로 음악을 재생해 들으며, 값비싼 CD를 더는 구입하려 들지 않는다.

 

파일 변환과 무한 복제의 편리함이라는 디지털의 강점은 스스로를 위협하는 칼이 되었고, 그 결과 CD라는 포맷은 오히려 LP보다 훨씬 더 일찍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얼마 전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 중 하나이며 디지털 기기에 있어 리더 격인 영국의 린 (Linn)이라는 브랜드는 그간 생산해 오던 CD 플레이어의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네트워크 뮤직서버인 DS 시리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린(Linn)은 턴테이블은 계속 생산하기로 했다. LP의 시대는 가고 CD가 그 자리를 대신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최고의 포맷으로 활약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금세 사라져버릴 줄 알았던 포맷인 LP는 여전히 발매되고 있으며, 턴테이블도 해외에서는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며 판매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여기서 우린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간편한 MP3 대신 왜 그토록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날로그 LP를 즐기며 그 소리에 환호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날로그 사운드의 매력

아날로그 사운드가 인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순기능이라던가 이런 진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정신적으로 약간 힘들더라도 그것이 더 큰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면 그 정도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CD나 MP3가 들려줄 수 없는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슨 짓인들 못하랴.

 

이제 누구도 라디오에서 듣고 감동하였던 음악을 찾아 음반매장을 찾지 않는다. 다방면의 루트를 인터넷에서 찾아내면 그만이고, CD를 장바구니 넣고 클릭 몇 번이면 당일에도 받아볼 수 있으며, 음원을 다운로드 받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음반을 갈아 끼우고 리모컨을 동작시키며 해설지를 읽을 시간도 아까울 지경이다. 커버는 작은 CD 표지, 아니면 웹이나 아이팟이 자동으로 커버플로우를 띄워주니 별 노력 없이도 다양한 곡들을 선곡해두면 몇 시간이고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면 머릿속에 남는 건 몇 개의 멜로디와 몇 명의 작곡가뿐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배경음악으로 인스턴트화 된 음악감상 습관은 이제 더 이상 앨범 단위가 아닌 곡 단위로 파편화되어 앨범의 컨셉과 줄기를 이해할 여유를 빼앗아갔다. 풀 사이즈의 LP 커버를 감상하며 앨범에 동봉된 해설지를 밑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던 습관도 이젠 옛날 일이 되었고, 그저 필요하면 인터넷에서 짧은 해설을 찾아 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신호는 간편한 그 속성만큼이나 음악 감상의 습관마저 바꾸어버렸다. 이제 누구도 발품 팔아 음반매장을 돌아다녀 어렵게 구한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숨 죽여 가며 음 하나하나에 몰입하여 음악을 감상하던 희열을 기억하지 않는다. 간편함과 속도를 중시한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편안함과 여유로움 속의 집중 등 여러 가지 장점들을 일거에 제거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LP의 A 면 첫 번째 곡 위에 카트리지를 올려놓고 끝없이 이어지는 소릿골을 따라 B면 마지막 곡까지 진득하게 듣는 습관이 이제는 너무나 귀찮을지 모르겠지만 디지털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더 큰 음악적 감동과 깊이 있는 음악 감상 습관을 되살려 줄 것이다. 아울러 하루 종일 들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질과 차곡차곡 쌓여가는 LP 컬렉션의 즐거움은 덤이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만끽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 1)  LP


국내에서는 90년대 중반 이후 LP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었고 특히 클래식 LP의 경우 당시 이후 완전히 새로운 발매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신보와 구보가 발매되고 있다. 또한, 재발매의 경우 새로운 마스터를 바탕으로 발매되기도 하는데 180그램 또는 200그램 중량반(重量盤)으로 발매되어 과거의 명연들 또한 고음질 LP로 상당히 많은 레퍼토리를 아날로그 사운드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꼭 이러한 고음질 LP가 아니더라도 그 옛날의 무수히 많은 명연들을 담은 LP들이 중고로 시장에 산재해있고, CD로 발매되지 않은 레퍼토리가 아직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아는 애호가라면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LP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오프라인 매장들은 서울의 명동 회현상가와 용산 전자랜드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으니 종종 직접 찾아가도 좋고, 온라인 LP 전문매장들도 몇 년 전부터 꽤 많이 생겨 온라인 구입도 편리해진 편이다. 하지만, LP는 CD와 달리 표면 상태와 실제 음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직접 보고 플레이해본 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가격도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해진 편이어서 장당 만원 안쪽에서도 꽤 훌륭한 레퍼토리의 LP들을 구입할 수 있고, 특히 80~90년대에 국내에서 발매한 라이센스 LP는 CD 구입이나 음원 다운로드에 할애되는 비용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경제적 장점도 있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만끽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2) 턴테이블

LP를 듣기 위해서는 일단 이 턴테이블이라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턴테이블은 LP를 올려놓는 플래터와 이것을 회전시켜주는 모터, 카트리지가 장착되어 LP의 표면위를 주행하며 카트리지가 신호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톤암, 그리고 이 모두를 지지해주는 베이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턴테이블은 LP는 얹어 놓는 플래터와 카트리지를 장착하는 톤암을 서스펜션을 이용해 띄워 놓느냐 아니면 바닥에 지지시키느냐에 따라 플로팅 방식과 리지드 방식으로 나뉘며,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방식에 따라 벨트 드라이브, 아이들러, 그리고 다이렉트 드라이브 등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각각의 방식에 어떤 순위를 두어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오랜 세월 동안 각 방식이 공존해오면서 현재는 중저가 턴테이블은 다이렉트/리지드 방식이 대부분이고, 고급 턴테이블의 경우 벨트 드라이브에 플로팅 또는 리지드 방식이 혼용되고 있으며, 가라드, 토렌스 등의 턴테이블로 대변되는 아이들러 방식은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에 밀려 현재는 거의 생산되지 않고 있다. 편의성을 중시하고 주로 듣는 장르가 팝이라면 다이렉트 드라이브를, 편의성은 떨어져도 음질을 중요시하는 클래식 마니아는 벨트 드라이브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만끽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3) 카트리지

카트리지는 턴테이블의 톤암에 장착하여 LP의 소릿골 (Groove)에 기록된 아날로그 신호를 읽어들일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인데, 예를 들어 CDP에서 CD 표면의 디지털 신호를 읽어들이는 픽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카트리지는 크게 신호를 읽어 들이는 방식에 따라 MM (Moving Magnet) 타입과 MC(Moving Coil) 타입으로 나뉜다.

 

카트리지에 달려있는 바늘을 캔틸레버라고 하는데 이 캔틸레버 끝에 달려있는 스타일러스가 LP의 소릿골과 직접 접촉하여 진동신호를 읽어내면 이 신호를 카트리지 내부에서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석을 움직이게 하여 변환해주는 방식이 MM이고, 내부의 코일을 움직여서 변환해주는 방식을 MC라고 한다. MM 카트리지는 MC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바늘이 마모되면 교체가 가능하여 가장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MC의 경우 생산이 까다로워서 비싸고 바늘이 마모되어도 교체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며 출력 전압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 MC를 지원하는 포노앰프를 마련해야 하는 등 사용이 다소 불편하다. 그러나 MM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역의 표현력이 좋기 때문에 클래식마니아들이 선호하는 카트리지이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요즘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MM 만큼의 출력을 가진 고출력 MC가 많이 출시되고 있어 만일 MM의 편의성과 다이내믹스에 저출력 MC에 근접하는 고역 해상도를 원한다면 아주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만끽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4) 포노앰프(Phono Amp)

보통 앰프에 턴테이블을 연결해주면 바로 소리가 나올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모깃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CD플레이어의 출력이 2볼트 정도인 데 반해 카트리지의 출력은 MM(moving magnet) 카트리지라고 해도 3m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한 번 더 증폭을 해주어야 적절한 음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포노앰프이다. 하지만, 포노앰프는 증폭률도 상당히 클 뿐더러, 고음은 강하게 저음은 약하게 기록된 LP의 신호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기능(RIAA equalization 혹은 Phono equalization)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증폭이 아니다. 이 포노앰프의 완성도에 따라 최종적인 음질의 차이가 카트리지만큼 크게 난다.

 

 

 

간혹 아날로그 전성기에 나온 앰프의 경우 포노앰프가 내장된 경우도 있으나 요즘 출시된 앰프에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턴테이블은 CD 플레이어처럼 앰프에 바로 연결하는 것만으로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중간에 포노앰프를 붙여주어야 한다. 만일 출력전압이 1m볼트 이하인 저출력 MC를 사용하는 경우 MC에 대응하는 헤드앰프형 포노앰프를 구입하거나 MM전용 포노앰프에 적당한 승압트랜스를 연결해서 또 한 번 증폭을 해주어야만 적절한 음량을 얻을 수 있다.

 

 

 

아날로그의 현재 그리고 미래

CD가 주도하던 음악시장을 음원파일이 대체해버린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시 LP를 찾고 턴테이블과 카트리지를 구입하고 있다. 더 이상 메마른 디지털 사운드가 아닌 차별화된 음질과 레퍼토리를 찾는 것은 단순히 ‘향수’에 목마른 장년층의 추억 만들기가 아니다. 

 

인간의 가청한계는 일반적으로 20Hz 에서 20kHz 이지만 가청한계 밖의 소리도 우리의 몸이 인지한다고 본다면, 일반적인 CD의 고역한계가 22kHz에 그치는 반면 일반적인 카트리지도 LP 재생시 고역한계는 45kHz에 육박하며 요즘엔 100kHz까지 재생하는 카트리지도 존재한다. 실제로 CD를 듣다가 LP를 들으면 미세한 소리의 입자 등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단순히 아날로그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SACD를 들어보면 디지털 포맷이지만 마치 고가의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LP를 들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대역한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며 한시라도 그 틈바구니에서 뒤처지면 낙오되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변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목표로 하는 핵심까지 깡그리 변화하는 것은 아니며 그 기저에 추구하는 바는 어쩌면 지극히 동일한 것이다. CD의 출현과 쇠락. 그리고 디지털 음원으로의 변이 등은 그 소비 패턴과 유통방식의 변화이지 결코 오리지널 음원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과 그 음질의 최종 목적지는 지금 얘기하고 있는 아날로그의 그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가까운 미래에 CD가 더 이상 발매되지 않는다 해도 LP는 꾸준히 그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이며 턴테이블도 계속해서 생산되어 꿋꿋이 오디오시스템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을 것이다.

  이장호 / 오디오 평론가, 아날로그 애호가

알레스뮤직, 비트볼 뮤직 등 음반사에서 근무했으며, <스테레오뮤직> 필자를 역임했다.
현재 오디오 전문 네이버 블로그 '맛있는 오디오' 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원문 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audioguide/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