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악기의 자리 배치는 어떻게 하나

2009. 4. 13. 22:46오디오&AV



[중앙일보 이장직] 오케스트라만큼 '자리'가 중요한 직장도 없다. 거의가 앉아서 연주하는데다 자리에 따라 서열과 직급ㆍ연봉이 달라진다. 신입 단원 오디션 공고에도 처음부터 수석(first chair 또는 principal)ㆍ부수석ㆍ평단원 등 '자리'를 명시한다. 승진 기회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평단원이 수석이 되려면 수석이 은퇴하거나 '직장'을 옮긴 뒤 실시하는 오디션에 따로 참가해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치법은 따로 정해놓은 게 없다. 악단의 전통, 지휘자의 취향, 공연장의 음향 조건, 연주 곡목과 장르에 따라 달라진다.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순회공연을 다닐 때 공연장마다 무대 리허설을 통해 악기 배치를 바꾼 것은 유명한 얘기다.

하지만 기본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중요하고 바삐 움직여야 하는 파트일수록, 음량이 작은 악기일수록, 같은 악기에서는 서열이 높을수록 지휘자와 가까운 곳에 가까운 곳에 앉는다. 객석에서 볼 때 현악기ㆍ목관악기ㆍ금관악기ㆍ타악기 순으로 멀어진다. 현악기는 두명씩 보면대를 함께 사용하는데 객석 쪽에 앉아 있는 단원의 서열이 높다. 이 단원이 연주하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악보를 넘긴다.

목관악기는 플루트와 오보에가 앞줄, 클라리넷과 바순이 뒷줄에 앉는다. 수석 주자 4명은 4중주를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치밀한 앙상블을 위해 4각형을 이룬다.

금관악기는 호른은 왼쪽, 트럼펫ㆍ트럼본ㆍ튜바는 오른쪽에 자리를 잡는 게 보통이다. 트럼펫ㆍ트럼본ㆍ튜바는 간접 반사를 통해 음향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비스듬하게 앉히기도 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르 토스카니니가 즐겨 썼던 방식이다. 팀파니는 무대 맨 뒤의 중앙에 자리잡고 그 양옆에 타악기를 둔다. 하프와 건반악기는 무대 왼편의 현악기와 타악기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유럽식


지휘자ㆍ악단에 따라 주로 달라지는 것은 현악기 배치법이다. 유럽식ㆍ미국식ㆍ절충식이 있다. 유럽식(또는 독일식)은 19세기 후반부터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 아르투르 니키시, 아드리언 볼트 등이 즐겨 사용했다.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제2바이올린을 차례로 배치하고 첼로 뒤에 더블베이스를 둔다. 토스카니니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은 양쪽 어깨처럼 똑같은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1899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창단 공연에서 이 방식을 채택했고 지금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지휘 유리 테미르카노프),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지휘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지휘 미하일 플레트노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지휘 리카르도 샤이), 파리 오케스트라(지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이 유럽식 배치를 고수하고 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스페인 광시곡'이나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 4악장처럼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선율을 주고 받으면서 이어갈 때는 이처럼 둘을 마주보게 앉게 하는 게 음향효과를 위해 좋다. 최근 젊은 지휘자들 사이에서는 유럽식 배치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02년 9월 7일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감독 취임 후 첫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할 때도 이 방식을 택했다.

◇미국식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배치법은 미국식이다.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앉고 첼로 뒤에 더블베이스가 포진한다. 고음은 왼쪽, 저음은 오른쪽에 배치하는 식이다. 1930년대 토머스 비첨 경이 라디오 방송 초기에 마이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했고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가 널리 보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런던 심포니, 헝가리 국립 교향악단이 미국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은 같은 선율을 연주할 경우도 많다. 악기의 소리구멍이 객석을 향해 있기 때문에 고음 선율이 화려하게 도드라지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절충식

유럽식과 미국식의 장점을 결합시켜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의 순으로 배치하는 절충식도 있다.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감독 시절 당시 유행했던 현악4중주단의 자리배치를 본따 만들었다고 해서 '푸르트벵글러식'이라고도 한다. 악장(樂長)과 첼로 수석의 긴밀한 호흡을 살릴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NHK 교향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뉴욕 필하모닉,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 신시내티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이 채택하고 있는 모델이다.

한스 리히터(1843~1916)는 저음 현악기를 골고루 배치하기 위해 첼로ㆍ더블베이스를 절반씩 나누어 좌우로 배치했다. 풍부한 저음을 골고루 분산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빈 필하모닉은 상주 무대인 빈 무지크페어라인에서 연주할 때는 더블베이스를 타악기 뒤에 일렬 횡대로 배치해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온갖 다양한 악기 배치법을 실험한 지휘자로 유명하다. 1939년엔 목관악기를 맨 앞에 두고 그 뒤로 왼쪽부터 트럼펫ㆍ현악기ㆍ호른, 그 뒤로 트럼본ㆍ더블베이스ㆍ타악기를 두는 '업사이드 다운'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현악기와 관악기를 각각 좌우에 배치하기도 했다.


작곡가에 따라 특별한 악기 배치를 주문하기도 한다. 베토벤은 '웰링턴의 승리' 악보에 큰북과 작은북을 무대 뒤 양옆에 한벌씩 배치하도록 했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좌우로 나뉘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4악장에서는 로마 군대의 행진 장면에서 금관앙상블이 발코니석에서 연주한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 코플랜드의 '조용한 도시'에서는 트럼펫을, 말러의 '교향곡 제2번'과 R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에서는 금관 앙상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에서는 오보에와 차임벨을 무대 뒤에 배치해 극적인 효과를 노린다.

긴 직사각형 모양을 한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지휘자를 중심으로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제2바이올린 순으로 동심원을 그린 다음 첼로 뒤에 더블베이스를 배치한다. 현악기의 왼쪽에는 목관악기와 호른, 하프, 오른쪽에는 트럼펫, 트럼본, 튜바, 팀파니가 앉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처럼 아예 현악기와 관악기를 좌우로 갈라 놓는 경우도 있다. 작곡가 바그너가 직접 설계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지붕이 덮여져 있다. 바닥은 계단식으로 꾸며 지휘자에게서 점점 멀어질수록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ㆍ더블베이스, 플루트ㆍ하프, 오보에ㆍ클라리넷ㆍ바순, 호른ㆍ트럼펫, 트럼본ㆍ튜바ㆍ타악기 순으로 내려간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츨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2005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