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와 변주]300년간 바흐를 숨쉬게 하는 손

2009. 4. 13. 22:52오디오&AV

바흐를 사랑한 피아니스트들

 

사람들은 왜 바흐를 듣는가? 지난주에는 바흐 음악이 전해주는 '논리적 감동'과 '따뜻한 위안'을 얘기했다. 이번주에는 바흐 연주의 대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먼저 글렌 굴드(1932~82·사진). 바흐의 피아노 음악을 거론할 때 누구에게라도 가장 먼저 떠오를 이름이겠다. 그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평생에 걸쳐 두 번 녹음했다. 다시 말해 '바흐'는, 작곡가들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했던 굴드가 평생 동안 애착을 가졌던 음악가였다. 특히 1955년에 첫번째로 녹음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주.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그것을 "비르투오소의 역사에 진정으로 새로운 무대가 열렸다"고까지 평했다.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는 어땠던가? 빠른 템포와 절제된 스타카토, 음과 음 사이의 여백, 여러 성부를 마치 따로 녹음하기라도 한 것처럼 충실하게 구현했던 대위법…. 그것은 굴드 이전의 누구에게서도 만나기 어려웠던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생전의 굴드는 그것을 "10대 중반에 이미 형성됐던 나의 스타일"이라고 술회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그 개성은 기존의 주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굴드가 10대였던 1940년대에 주류를 이뤘던 바흐 해석은 당연히 낭만주의였을 터. 에드빈 피셔, 란도프스카, 파블로 카잘스 등이 그렇지 않았던가. 하지만 굴드가 보기에 그것은 "바흐와 별 관련이 없는 연주"였다. 그는 앞 세대의 바흐 연주가들 가운데 오로지 로잘린 투렉(1914~2003)만을 '긍정'했다.

굴드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에 바흐 해석의 지침과도 같았던 존재는 에드빈 피셔(1886~1960)였다. 기계적 객관주의를 배격하면서 영적인 연주를 들려줬던 피아노의 사제(司祭).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49·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는 "(피셔의 바흐 연주는) 대단히 낭만성이 강하다"고 평했다. "게다가 40년대에는 지금보다 녹음과 편집 기술이 많이 떨어졌던 탓에, 요즘 세대가 그의 바흐를 들으면 실망할 겁니다. 페달도 많이 사용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테크닉이나 짧은 선율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지요. 그래도 피셔는 20세기의 바흐 스페셜리스트를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굴드가 20세기 중반 이후를 완전히 주도했던 건 아니다. 강 교수는 "적어도 바흐의 '평균율' 연주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리히테르를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리히테르(1915~97)는 굴드와 상반되는 스타일의 바흐를 선보였던 피아니스트. 그는 굴드와 달리 페달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레가토를 구사했다. 강 교수는 "리히테르의 바흐는 (굴드에 비해) 음색에 신경을 많이 쓰는 온화한 연주"라고 부연했다.

굴드가 유일하게 동의했던 앞 세대의 거장 로잘린 투렉은 어땠을까? 굴드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투렉의 연주는) 각 성부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와 더불어 직선적 부분도 매우 뛰어나게 고려돼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녀가 견실한 대위법을 구사했을 뿐 아니라 선율의 진행에서도 유려했다는 호평일 터. 하지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가 귀에 익은 이들이 투렉의 연주를 접한다면 좀 답답할지도 모를 일이다. 투렉의 연주는 굴드에 비해 템포가 느리고 선이 굵다. 비슷한 스타일을 구사했던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1924~1993)도 마찬가지. 강 교수는 "투렉이나 니콜라예바는 모두 여성이지만, 리히테르나 굴드보다 오히려 더 선이 굵은 연주를 펼쳤다"고 평했다.

살아있는 피아니스트로는 누가 있을까? 정확하고 학구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안드라스 쉬프(56)의 '단정한 바흐'를 빼놓을 수 없을 터. 또 진지한 구도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머레이 페라이어(62)와 수정처럼 맑은 분위기를 풍기는 안드레이 가브릴로프(54)의 '차가운 바흐'도 한번쯤 접해야 할 '문제적 연주'다. 그밖에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80)가 선보이는 화려하고 강렬한 타건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별미'로 맛볼 만한 연주. 바흐는 그렇게,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21&newsid=20090409173108548&p=k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