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계의 페라리

2008. 11. 28. 21:33MTB

[매거진 esc] 자전거 명작열전|콜나고 CF7
한겨레
» 콜나고 CF7
이탈리아 자전거산업의 중심지 밀라노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소도시 캄비아노에 에르네스토 콜나고(Ernesto Colnago)가 작은 공방을 차린 것이 1953년이었다. 그 작은 공방은 지금도 ‘자전거업계의 페라리’라고 일컬어지며 최고의 품질과 성능의 자전거를 만든다. 자전거 중에서도 로드바이크, 로드바이크 중에서도 경기용으로 바로 쓸 수 있는 로드레이서가 주력 품목이다. 1980년대부터 산악자전거도 만들지만 매출의 90% 이상이 로드바이크일 정도로 콜나고는 로드바이크의 스페셜리스트다.

12살 때부터 용접공으로 일한 콜나고는 자전거 공방에 취업해 프레임을 용접하며 제작기술을 익혔다.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1951년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자전거 인생의 계기가 됐다. 바로 자전거 공방에서 일했던 경험과 레이서로 자전거 경주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공방을 열기로 한 것. 그의 공방은 가로 세로 5미터밖에 되지 않았지만, 1954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만 들어도 빠른 자전거, 콜나고의 탄생이다.

1960년, 그가 만든 자전거로 이탈리아팀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서 콜나고가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공방을 연 이후에도 프로 사이클 팀의 정비공(미캐닉)으로 꾸준히 활약해 사이클계에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졌다. ‘투르 드 프랑스’와 ‘지로 디 이탈리아’를 각각 5회 우승하고, ‘부엘타 에스파냐’도 우승한 20세기 최고의 사이클리스트 에디 메르크스(벨기에)가 1972년 콜나고를 타고 ‘아워 레코드’에서 세계 기록을 경신해 콜나고는 다시 한 번 유명세를 떨쳤다. 그동안 콜나고가 후원한 프로 사이클팀만 100개가 넘고, 선수도 2000명이 넘는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은 전통과 현대가 각축을 벌이던 시대였다. 전통적인 방법과 소재로 자전거를 만들던 이탈리아 업체들이 크게 위축되고, 새로운 소재와 공법을 내세운 미국 업체들이 급속하게 성장한 시기였다. 콜나고는 다른 이탈리아 업체와 달리 재빨리 현대 기술을 도입했다. 그때까지 자전거 프레임으로 쓰이던 것은 주로 스틸이었고, 좀더 현대적인 재료가 알루미늄·티타늄이었다. 콜나고는 탄소섬유를 자전거의 프레임에 적용하길 원했고,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를 찾아갔다. 페라리는 F1에 참가하면서 탄소섬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 만에 콜나고와 페라리는 최초의 카본 모노코크 프레임을 세상에 내놓는다.

콜나고는 2000년부터 페라리 자전거를 만든다. 바로 CF(Colnago for Ferrari) 시리즈다. 콜나고의 최상급 모델에 페라리의 이탈리안 레드로 옷을 입히고 페라리의 상징인 ‘도약하는 말’을 그려놓았다. 2008년에는 페라리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을 한정으로 만들기도 했다. 2009년형 모델인 CF7(사진)은 새롭게 디자인한 카본 프레임에다 탑튜브에 페라리의 F1 경주차를 그려 넣었다. 주요 부품은 이탈리아의 로드바이크 부품 전문업체 캄파뇰로의 최상급 부품인 슈퍼레코드로 통일했다. 슈퍼레코드는 카본과 티타늄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세계 최초의 뒤 11단 기어를 갖춘 고급 모델이다. 60대 한정으로 생산된 페라리 60돌 기념모델은 국내에서도 1700만원에 판매됐다.

한동옥/월간 <자전거생활> 편집장

출처 :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228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