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10. 22:23ㆍPRESS
1992년 스테레오뮤직 17호
나의 레코드 콜렉션
피셔-디스카우가 들려주는 풍성한 독일가곡의 세계
내가 어렸을 때 명절이면 늘상 마을 농악대의 신명나는 가락이 나의 마음을 끌었었다. 그리고 국민학교 때는 월요일마다 전교 조회가 있었는데 조회가 끝날 때마다 경쾌한 행진곡이 방송되었다. 그때는 그 곡이 무슨 곡인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그 멜로디를 듣는 것이 너무도 좋아서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훈시에도 불구하고 월요일만을 기다렸었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그 곡이 행진곡 '쌍두독수리'와 '옛친구'였던 것 같다. 그 후에 하모니카를 혼자 배워서 저녁이면 집 앞 우물가에서 동요며 민요를 신나게 불어대었고, 고등학교 시절의 음악 수업 시간에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베르디의 '개선행진곡' 등을 감상한 후 본격적으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산 광복동에 있었던 고전음악 다방인 '백조', '전원'에서 음악을 감상했는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파바로티의 '오 솔레미오' 등이 기억난다.
그 뒤 서울의 레코드 가게에서 우연히 캠프 연주로 된 베토벤의 '바가텔과 변주곡'이란 레코드를 구입하여 들어보니 굵은 톤과 안정감 있는 음질에 감탄하여 50~60년대에 제작된 레코드를 수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디오에 관한 서적을 구하여 읽고 실력있는 매니아의 집도 방문해 그 방면의 지식도 상당히 쌓게 되었고, 지난 88올림픽 때 문화행사로 개최된 동구권의 여러 연주단체 공연에는 대부분 참석하여 여타 국내 공연과는 다른 수준높은 음악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레코드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커다란 편차를 보이는 법이다. 나는 이런 점을 특히 유의해서 레코드를 골랐다. 평론가의 연주평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엔 나의 주관적 판단이 내가 사서 모을 레코드를 선정케 했다.
나는 그렇게 선정한 레코드를 매주 1~2장씩 꾸준히, 아주 고집스러운 습관으로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서 모은 레코드를 한 장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들어서 친숙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각 연주의 특징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고 그렇개 생긴 지식은 다시 레코드를 구입할 때 좋은 참고가 되어주었다.
나는 지금 성악곡을 주로 감상하고 있는데 특히 낭만주의 독일가곡중 피셔-디스카우가 노래하는 슈베르트와 슈만의 곡을 많이 듣고 있다.
디스카우는 1949년 첫 래코딩 이래 지금까지의 녹음량은 카라얀에 버금가는 정도이고 레퍼토리의 폭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특히 '겨울 나그네' 6회, 슈베르트 가곡 전 464곡 그리고 바흐 칸타타의 대부분을 레코딩 했으며, 그 외 베토벤, 슈만, 브람스, 볼프 등 그의 녹음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레코딩에 있어 디스카우는 독일어 가사의 전달과 음악성, 감정이입의 탁월함이 감동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많이 감상하고 있는 예술가곡은 낭만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그것은 시와 음악의 융합으로 창조되어 슈베르트와 그 뒤를 이은 슈만, 브람스에 의해 음악적인 완성에 이르러 리트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은 피아노 반주가 시적인 영상들을 적절하게 해석하여 노래하는 이의 목소리와 융화되어 짧은 서정형식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디스카우가 부른 슈베르트와 슈만의 리트는 이러한 서정형식을 가장 충실헤게 완성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누구의 말처럼 너무나 완벽한 것이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랄까. 그 극도로 정제된 예술적 긴장에 감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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