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이 만든 건축 2.5 10/9

2021. 10. 11. 20:58집짓기




기계공이 만든 건축 2.5
(음악이 있는 집 탄생 역사 추적!)

1.0

약 20년 전 울산 구시가지에 있는 저희 처가 건물이 낡아서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장모님은 한 건물에 저희 식구들과 같이 살길 원하셨고, 저는 그리하기로 하고 건축비 중 적지만 일부를 충당했습니다.

장인께선 기계설계 전공인 저에게 공사에 관한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처남 셋이 있는 집안이지만 모두 인문계열이라...

저는 울산의 삼대 건축회사 중 하나랑 계약을 했습니다. 그 회사 대표는 전부터 아는 음악 애호가였습니다.

완공 후 건축회사 대표가 농담 반으로 했던 말, 다음부터는 속 편한 관급 건축만 할 거라고 하더군요.

재미있는 건축 일은 곧바로 시작됩니다.

우선 설계 방향부터 잡았습니다.

연건평 85평 이층 콘크리트 철근 구조로 모두 네 가구가 살 수 있도록 설계안을 잡고, 그중 저희 가족이 살 곳인 21평 면적에 대한 세부 안입니다.

우선 21평 중에 정확히 10평 공간을 긋고 나머지 면적에 작은방 두 개와 주방, 화장실을 잡았습니다. 여기에 거실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거실이 따로 필요하지도 않고 공간상 여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家長)의 독재에 눈을 감다.

그렇게 구획을 정한 설계도를 본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의도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죠.

우리집 건축 철학

이 건축을 하기 이전에 새로 마련할 우리 공간의 구조에 대한 나의 철학을 가족에게 말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은 최소한의 면적으로 하되 우리 삶에 맞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잠을 자는 방은 넓을 필요가 없고, 주방도 마찬가지, 거실은 TV 보는 가족이 아닌 이상 불필요한 공간이다. 대신에 우리만의 문화공간이 될 자리가 중심이 된다. 이 문화공간은 음악을 듣고 같이 영화를 보며, 때로는 주변 지인들을 초대해서 독서토론이나 시민단체 활동에 필요한 회의 또는 토론 장소 등, 놀라운 공간으로 탄생할 것이다.

아내는 나의 이런 철학에 이미 공감을 하고 있었던 걸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건축 후에 이 공간의 활용은 지역에서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몇몇 방송사에서 다큐로 제작하겠다는 제의는 모두 거절했습니다만, 회사 사보 기자의 취재만은 허용했었습니다.

차음과 단열의 표준을 실증하다.

이 문화공간에서는 심야에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감상하더라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간이 방음문의 역할로 건너편 아이들 방이나 안방에는 소음이 도달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의 시민단체 활동 관련이나 연주회, 독서토론, 명화 감상, 마을 음악회, 세미나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한국표준건축 규격에 맞춰 철저히 시공했기 때문에 층간 소음도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경험에서 비추어 본다면 요즈음 초고급 아파트들이 얼마나 부실한 시공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후, 건축 과정에서 축적한 사진 수천 장과 기록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과정에서 '전원생활 동호회'라는 회사 서클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2.0

1988년, 퇴직금을 중도 청산하여 경주 시골마을에 땅을 삽니다. 63평 3500만 원.

부동산 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GPS를 활용하여 검색하고, 발품을 팔아 물색한 울산 주변 14곳 중에서 최종 결정한 땅이었습니다.

나의 출퇴근과 부모님 왕래를 고려하였고, 최대 80평 이내이며, 간선도로와 5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 축사와 공장이 없는 땅, 바로 제가 정한 기본 조건에 꼭 맞는 입지였습니다.

물론 마을 어른들은 저 조그만 땅에서 뭘 하려나 의문이었을 겁니다만 이후에 진행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차츰 이해를 하게 되었을 겁니다.

집은 될수록 적은 면적이라야 하며, 전문 소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거라면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저의 철학은 13년이 흐른 지금까지 실증한 경험에 의해서 완벽히 적중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나이 육십이 넘고 점차 기력이 쇄퇴함을 생각할 때 집이 넓으면 하인을 거느려야 제대로 유지가 될 것입니다.

농사지을 땅도 없지만, 텃밭조차 가꾸지 않는 집이니 평생을 땅만 보고 그 수확물로 가계를 이루어온 순박한 마을 어르신들이 볼 때 우리 집은 베풀 대상이 되는 것이고, 당연히 불화나 이질감이 없는 관계가 저절로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건축으로 되돌아와서...

그리하여 63평 땅에 북미식 경량목구조 건축으로 설계와 계약을 하였습니다. 건폐율 40%에 꽉 차게 맞춰 25평 단층에 건축비 7500만 원으로 계약을 합니다.

이번에도 먼저 10평을 그어서 문화공간으로 정한 후 시작합니다.

천장 박공을 시공하지 않고, 입구 도어를 독일식 방음문으로 설치한 것 외엔 일반 목조주택의 기본 규격 그대로 입니다.

새집 증후군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이 포함된 자재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벽지는 '한지장' 안치용 선생님의 신풍한지로 한지 전문 도배사가 직접 시공한 것은 특별하다 할 수 있습니다. 풀도 농협에서 산 국산 찹쌀로 직접 쑤어서 썼습니다.

비용은 냉장고와 가구를 포함, 마을 어르신들 막걸리 값까지 총 1억 5천 쯤 들어간 걸로 기억됩니다.

63평 땅,
7500 건축비,
총 1억5천으로 이룬 전대미문의 보배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입니다.

나머지 2.5

부산 본가 65년 된 아파트, 반지하 11평 리모델링의 신화는 다음 편에....

#음악이있는집 #andiemusik #디자인목공방 #bausviewwood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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