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질과 음색 (템포와 타이밍)

2015. 3. 2. 16:07서양음악

여러분들은 분재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조그만 화분에 아주 기기묘묘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지요.

그 중에서도

단 한그루의 나무로 자연의 풍경을 압축 시켜 놓은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어떤 것 들은

나무 줄기를 이리 저리 휘게 만들어서 몇 개의 산등성이를 가진 산세를 보여 줍니다.

정말 솜씨 좋지요. 이 정도면 가히 예술의 경지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저는 분재의 비법을 알게 되었는데 조그만 묘목에 철사를 칭칭 감아 놓은 것을 뒤늦게나마 발견 한 것입니다.

결국 제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분재들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 없는 왜곡된 성장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곧게 뻗어야 할 줄기는 철사 줄에 억 매어

옆으로 위로 때로는 바닥으로 기묘한 각도로 비틀려져 있더군요.

이쯤 되면 누구라도 알 수 있지요

기형적인 환경을 조성해서 나무를 그렇게 성장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분재를 볼 때 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측은지심이 먼저 일어납니다.

물론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관이 달라 제가 감히 나설 일은 아니지만,

제가 볼 때는 그 나무는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 보다는, 그 누구도 가꾸는 이 없지만 길 옆 한구석에서 자유롭게 태어나

자연의 섭리에 따라 때때로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름 모를 들풀이 저에게는 훨씬 더! 가치 있게 보입니다.

 

음악을 듣게 된 이후로 저는 몇 가지 자아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음악답게 들려 준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명 연주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혹시 나는 분재처럼 왜곡된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음악에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것 일까

만약 이름 모를 들풀처럼 강인한 생명력이 음악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1978년

헐리우드에 한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갸름한 얼굴에 비쩍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몸이 좀 유연해 보이고

커크 더글러스 처럼 턱 안쪽이 오목하게 들어 가는 외모의 특징만 뺀다면,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젊은이로 보였습니다.

 

헐리우드에는 날이면 날마다

스타의 꿈을 간직한 미남,미녀들이 몰려들고

또 그만큼의 미남, 미녀들이 좌절감을 맛 보며 떠나는 곳인지라

이제 젊은이 한명이 이들의 대열에 새롭게 합류했다고 해서 새삼 놀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록 이 젊은 이가

Devil's Rain(75년작)에 처녀 출연한 뒤 그 뒤로도 2편의 영화와

2편의 TV 시리즈에 연속 출연한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는 톱 스타들이 즐비한 헐리우드에서 식탁 테이블 이야기 거리도 안되겠지요.

하지만 이 젊은이는 평범한 듯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에게는 없는..... 한가지 재주가 있었으니까요.

놀랍게도 이 청년은

1분에 120번씩 또박 또박 걷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항상 일정하게!

 

(헉! 이게 무슨 대단한 장기?)

 

하지만 허리우드 제작자들 눈에는 이 청년의 재주가 매우 매력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즉각 그를 캐스팅해서 영화 한 편을 만든 것을 보면 말이지요.

물론 영화 음악은 이 청년의 발걸음 수를 그대로 흉내 내어

1분에 120번씩 비트가 들어가게끔 작곡 되어졌습니다.

영화는 물론 제작자의 예상대로 일대 선풍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젊은 이는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이제는 편당 2천 만불을 받는 초 특급 스타가 되어 있습니다.

문제의 영화 제목은

 

"토요일 밤의 열기" 주연 배우는 "존 트라볼타"

그리고 영화음악을 담당한 그룹은 ‘비지스’ 였습니다.

디스코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유래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영화로 인해 디스코의 비트 수는 암묵적으로 공식화 되게 되었습니다.

일분에 120번씩.

 

템포(Tempo) 란

이태리어로 시간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템포의 일정 시점(보다 정확하게는 찰나의 정지된 시점)을 우리는 '타이밍'이라고 부릅니다.

그럼 비트는?

비트는 인간의 맥박 수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아래의 도표는 음악 형태에 따른 템포 가이드입니다.

 

ROUGH TEMPO GUIDE

POP STYLES / ITALIAN TERMS

 

Slow Ballad 50 - 75 / Largo 40 - 60

 

Medium Ballad 75 - 90 / Lento 50 - 66

 

Funk 85 - 110 / Larghetto 60 - 66

 

Rock 90 - 150 / Adagio 66 - 76

 

Disco 120 – 130 / Andante 76 – 108

 

House 124 – 135 / Moderato 108 - 120

 

Techno 124 - 145 / Allegro

 

Jungle 150 – 200 / Allegretto 120 – 168

 

Drum’n’ Bass 150 – 200 / Presto 168 – 200

 

Speed Metal 150 – 200 / Prestissimo 200 – 200+

 

Gong Kebyar 160 – 200+

 

보시다시피 음악의 종류에 따라 그 템포가 각각 틀리지요.

일반적으로 묘사하는 템포의 단위는 b.p.m (Beats per minute) 입니다.

알려져 있기로는 클래식이 b.p.m의 변화가 가장 큽니다.

하지만 이것은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

지구상의 음악 중 제가 알고 있기로는 국악이야말로 b.p.m 의 변화가 가장 큽니다.

클래식이 40 에서 210 정도의 체인지 변화가 있는 반면

국악은 놀랍게도 15에서 230 까지의 체인지 변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메트로놈은 40에서 208 정도입니다)

 

그럼 과연 템포는 무엇 때문에 필요할까요?

다시 한번 아래의 도표를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Tempo

 

Grave ( Very slow )

 

Lento ( Slow )

 

Largo ( Broadly )

 

Larghetto ( Rather broadly )

 

Adagio ( In a leisurely manner )

 

Andante ( At moderate walking speed )

 

Moderato ( At moderate speed )

 

Allegretto ( Fairly fast )

 

Allegro ( Literally ‘merry’ or cheerful’ Fast )

 

Vivace ( Lively )

 

Presto ( Very fast )

 

Prestissimo ( As fast as possible )

 

Accelerando ( Getting gradually faster )

 

Rallentando,

Ritardando ( Getting gradually slower )

 

Ritenuto ( Holding back )

 

Rubato ( Flexible tempo )

 

Tempo guisto ( Strict tempo )

 

잘 보시면 음악가들이 얼마나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금방 아실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vivace 를 보십시요.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템포를 빠르게 하면 lively 한 감정 상태를 보여 줄 수 있다고

음악가들은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요?

그리고 자세히 보시면 템포는 결국 스피드와 혈연 관계라는 것도

잘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지구상의 음악계를 지배한 제왕적 지휘자가 두 명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독일에서 태어나 나치 파동에 휩싸였고

다른 한 사람은 이태리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가 바로 그 들입니다.

 

이 자리는 두 사람의 인생 항로 또는 음악 역정을 되 돌이켜 보는 시간이 절대 아닙니다.

제목 그대로 ‘템포’에 국한 해서만 이야기 할 까 합니다.

이 두 사람은 물과 불처럼 음악을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 많은 후인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Beyond the Tempo, on the Tempo

 

두 사람의 연주를 들을 때 마다 제가 떠 올리는 단어들입니다.

교향악단에 있어서 전체적인 템포 설정은 지휘자가 갖고 있는 절대 권한 영역입니다.

그러나 권한 뒤에는 의무와 책임이 반드시 뒤따르는 법이지요.

의무는 오케스트라의 장악 능력이고

책임은 그렇게 배양시킨 호흡을 관중들에게 완벽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지휘자가 마지막 악장(예를 들어 프레스토)을 숨가쁘게 몰아 부치면서

관객들의 감정을 최고조로 고조 시킨 다음

(주: 배경 설명 - 바로 이 한 순간을 위해 지휘자는 3 악장 안단테를

아다지오 처럼 느릿 느릿하게 템포를 설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프레스토에 들어 와서는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 내 가지고 설랑

마치 므라빈스키처럼 엄청난 힘으로 몰아 부친 것입니다.

이유는 당연 템포의 급격한 콘트라스트를 통해서 감정의 기복을 높이기 위해서)

마침내 피날레의 시간은 다가오고 회심의 미소와 함께

짠!!!!

음악이 멈추었습니다.

(주 : 성급한 관중의 박수가 막 나올려는 그 찰나!)

이 때 돌연 들려오는 한 소리.

아니나 다를까 그렇지 않아도 간 밤에 먹은 술 때문에

뭔가 불안해 보이던 금관악기 주자가 그만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려 버린 것입니다.

돌연 일그러지는 지휘자의 얼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쳐다 보는 단원들의 원망섞인 눈

그리고 웅성 거리는 객석의 소음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금관악기 주자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경우 생길 수도 있는 가상 연주 회장을 과장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협연자와 연주할 때

협연자와 오케스트라간의 타이밍이 안 맞으면 연주 내내 이러한 삐그덕 거리는 현상이 자주 발생됩니다.

특히 협연자가 예정에 없던 루바토(rubato)를 구사해서 템포를 변형시키는 경우

오케스트라는 리듬을 맞추느라 진땀 좀 흘려야만 합니다.

물론 능숙한 지휘자는 요령껏 잘 넘어 가겠지만.....

근대적인 메트로놈이 처음 선 보인 것은 17세기부터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전에는 당연 몸으로 때웠습니다.

원.....투.....쓰리.....포

하는 식으로 교사가 호령하면 그 템포에 맞춰서 학생은 악기를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 주자들 간의 템포가 제 각각이었습니다.

 

느린 사람

빠른 사람

평균인 사람

 

해서 자연히 지휘자가 필요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템포를 단 한 사람의 지휘봉에 위임 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당연 메트로놈이 없었던 옛날에는 음악이 어떤 템포로 연주 되었는지, 그 누구도 모릅니다.

단지 추측은 할 수 있지요.

정격 연주를 하는 아르농쿠르나 호그우드를 들어 보면서

“아! 이 정도의 템포였나 보다”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템포 정말 믿을 수 있을까?)

그러면 17세기 이후에는 제대로 된 메트로놈이 나왔냐 하면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초창기 메트로놈은 최고 80 비트까지 나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나마 오차가 심해 시중에 굴러 다니는 메트로놈 수 만큼 오차 폭이 컸습니다.

이런 현상은 몇 세기 동안 지속되다가

시계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메트로놈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지휘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사항 중에

템포를 한 자리 배정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템포를 완벽하게 통제한 위대한 인물이 토스카니니 였습니다.

 

스위스의 정밀 시계처럼

그는 템포를 완벽하게 구사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엄청난 훈련과 리허설이 뒤따랐죠.

완벽주의자로 불리는 카라얀 역시 토스카니니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아는 사실입니다.^^

토스카니니는 on the Tempo 즉 템포를 늦추거나 빨리 당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재현 하는 것만이

지휘자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흔히들 그를 가르켜 즉물주의자 라고 칭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때문입니다.

(그런데 즉물주의라는 말 일본에서 건너 온 것 같은데…..맞지요?)

 

반면에 후기 낭만주의를 계승한 푸르트뱅글러는 이와 반대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는 ‘왔다 갔다’ 하는 정밀한 시계 추 보다는

‘왔다 갔다’ 하면서 갑자기 떠오르는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주관주의 즉 순간 순간의 감정 변화와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 하는 그로서는

템포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템포 밖으로 벗어나 버린 것입니다.

 

즉 beyond the tempo !

그에게 있어서 안단테는 상황에 따라서 아다지오가 될 수도 있었고

때로는 모데라토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객관론자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불러 왔지만요.

그럼 요즘은 어떻게 지휘합니까?

소위 말하는 신객관주의 (New Objectivism) 가 음악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오케스트라 기량이 급격히 '표준화' 된 것에 기인합니다.

요즘 연주자들은 만국 공통의 전자식 메트로놈으로

어렸을 때부터 템포를 체계적으로 연습했기 때문에

서로간에 템포를 조절하는 것이 비교적 간단합니다.

물론 옛날에 비해서 그렇단 말씀입니다.

객원 지휘자라도 며칠만 연습하면 손 발을 맞출 정도로 템포감을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휘자의 역량이 가장 크게 좌우하겠지만!

(주 : 여기서는 신객관주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어디까지나 템포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으니까요)

여하간

요즘 지휘자들은 템포에 아주 능수 능란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템포를 맞출 수도 있고 템포를 체인지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푸르트뱅글러식 템포 설정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Within the Tempo 입니다.

 

**** 상기 의견들은 모두 제 주관적인 소견이 아주 강하게 당겨져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잘 살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훌륭한 지휘자 일까요? 라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정중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더 좋아 하는 지휘자가 더 훌륭한 지휘자입니다."

문득 과거가 기억 납니다.

 

제가 처음으로 구입했던 클래식 음반은 카라얀이 지휘했던 베토벤의 제 5번 (운명) 교향곡이었습니다.

당연 음반은 성음에서 발행된 라이센스 판이었습니다.

구입하게 된 계기는

“아저씨 초본데요, 클래식 음반 한 장만 추천해 주세요” 라고 동네 음반 가게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클래식은 통 찾는 사람이 없어서 몇 장 없는데" 라고 말씀 하시더니

추천작이라고 골라 준 것이 소장 목록 1 호의 클래식 판이 되고 만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게의 클래식 판은 전부 합쳐서 20 장 밖에 안되었습니다.

물론 그 가게에 있던 20장은 그 후, 제 이름으로 명의 이전 되었습니다.

클래식을 만나기 전 까지는 매일 같이 퀸의 “위~ 아~ 더~ 챔피언”, “돈 스톱 미 나우”를 신나게 틀어 주던

저희 집 인켈 턴테이블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맞이 해서도 전혀 싫은 기색 없이 주인의 뜻에 잘 복종해 주었습니다.

비록 가게 주인 덕분에 얼떨결에 카랴얀을 만났지만

이 것 역시 운명이겠거니 하며 정말 열심히 운명을 들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얼마나 그 판을 많이 들었던지

바늘이 어느 지점만 가면 하루 종일 맴 돌며 ‘배 째’ 하는 바람에

울화통이 터지기도 했지만 저는 여전히 운명을 믿고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가다 일 악장에서 순식간에 이 악장으로 건너 뛰는 환상적인 묘기를 선 보여

저로 하여금 무협의 세계를 알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최후의 운명 교향곡을 들려 주던 그 음반의 최후 운명을!

아마도 이 곡이 끝나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리라는 것을 미리 예감이라도 한 듯

거의 처절한 운명을 들려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위 명반 가이드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푸르트뱅글러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반'을

최고 명반으로 꼽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최고 명반 이라는데!

이 어찌, 아니 들어 보고 지나칠 수 있으리요! 명색이 음악의 순례자인데!

냉큼 동네 음반가게에 달려 가서 물어 보았더니 요즘은 그런 판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모노 듣는 사람 있어” 하면서요.

청계천과 황학동 역시 이 잡듯 뒤졌지만 모두들 고개를 회회 저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가게에서는 이런 말도 덧붙이더군요.

“그 사람 요즘 새로 나왔나요? 그래도 카라얀 같은 노장이 최곱니다.

그냥 카라얀 거 골라 가세요”

“.........!”

그 판을 제가 손에 쥐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참의 세월이 지나서 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학생의 신분에서 어엿한 사회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설레는 가슴으로 구입한 그 음반은 성음사에서 ‘베를린 오케스트라 뭔가 뭔가 기념’이라며 내놓은 박스 판 이었습니다.

마침내 명반이란 것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돌아 오자 마자, 마치 제사를 지내는 제주와 같이 경건한 자세로 서서,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바늘이 턴테이블에 떨어지기 때까지의 그 짧았던 순간

저는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아!

그 때서야 비로서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 바늘을 강제로 내려 놓고 싶었지만

제 턴테이블은 최신 테크닉을 구사한 완전 자동 턴테이블

그것도 리니어 트랙킹암을 장착한 엄청난 고급품이었던 관계로

(----여기까지는 저에게 물건을 판 오디오 샵 주인의 말쌈임!

나중에 스타트가 안되어 수리하러 갔더니 주인 왈 그냥 버리고 가란다.

완전자동은 한번 고장 나면 수리 하는 비용이 사는 비용이나 똑 같단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테크닉스 1200으로 강제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그것도 6개월 할부로!)

 

바늘이 떨어지기 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입니다.

그런데.....막상 소리를 들어 보니깐,

왱! 이게 명반이야!

갑자기 분노가 일어 났습니다. 속았다는 생각때문에요.

명반이라 하길래 천상의 화음이 쫙 펼쳐지는 줄 알았더니!

(당시 전 럭스맨 인티에 테크닉스 SL-QL1 턴테이블, 바늘은 원래 달려 있던 것-이름 모름,

스피커는 JBL PRO 3 – 조그마 한 것, 예산 부족으로! 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제가 제 돈으로 산 첫 번째 오디오였거든요)

만 천하에 고백하건대 제가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그 판이 정말로 명 연주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템포를 알게 될 때까지 그리고 존 콜트레인의 음악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일분이 60초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토스카니니에게 있어서 일분은 단연코 60초였습니다.

59초도 아니고 61초도 아닌!

하지만 말이 쉽지 이 정도의 정밀한 템포를 구사하기란 정말 어렵겠지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 간의 엄청난 호흡 일치가 없고서야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지휘를 한 번도 안 해 본 저로서도 수긍이 갑니다.

그것도 그 시절에.

이번엔 푸르트뱅글러를 살펴 볼까요.

그에게 일분은 단순한 60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간에 굴복하지 않고 시간을 초월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일분은 40초가 될 수도 있었고 때로는 80초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완벽한 템포를 구사했던 토스카니니와

템포를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했던 푸르트뱅글러 중에서

과연 누가 오케스트라를 더 확실하게 장악 했다고 생각 하십니까?

 

제 생각에는 푸르트뱅글러입니다.

완벽한 템포란 연습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곳에 지휘봉이 마구 가는 지휘자와 ‘척 하면 앱니다’ 할 정도로

단원들 간에 템포가 맞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호흡이 맞아야 할 까요

 

느리게 하면 느리게 가고 빠르게 가면 빠르게 가고

지휘자의 마음 가는대로 연주가 따라 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를 보면 이런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것의 원인이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말도 안되게 “집단 최면” 입니다.!

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완벽한 호흡 일치 그것도 지휘자와 단원 그리고 청중들 까지 모두 합세한 거대한 감정 전위!

 

이 것이 명 연주 아닐까요?

 

듣는 이로 하여금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

감동의 차원으로까지 승격시키는

그 뭔가가 있다면 그게 진짜 명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 저는 웬지 푸르트뱅글러를 자주 듣게 됩니다.

그의 음악은 웬지 살아 있는 것 같아서요.

이전에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시간의 자유라는 개념 속에서!

 

Beyond the Tempo!

 

 

http://m.blog.naver.com/dkkimdy/22022311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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