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그네 고독 깨는 '콜록'..겨울 공연장 기침과의 전쟁

2014. 12. 16. 10:02상식

[한겨레]70분 연가곡 감정 흐름 깨져

 

 

무대와 객석 사이 불편함 초래

 

 

정경화는 어린이 꾸짖다 '도마'

 

 

외국에선 기침 완화용 사탕 제공도

 

클래식 전용 공연장의 자랑인 풍부한 잔향은 소음을 만났을 때 반대로 독이 된다. 겨울이면 공연장 안을 어수선하게 떠다니는 기침 소리가 어김 없이 연주자의 집중력을 깨뜨리고 청중의 감상을 방해한다. 신경이 예민해진 연주자와 청중 사이에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 거듭되는 '기침 소동'

 

지난 11일 고양 아람음악당에서 열린 테너 마크 패드모어의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 나그네' 무대는 그야말로 '기침 소리와의 전쟁'이었다. 24개의 노래가 70여분간 단절 없이 이어지는 연가곡의 특성상 감정의 섬세한 흐름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공연장은 정숙한 분위기를 요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내고 지각 관객들의 추가 입장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만은 막지 못했다. 여기에 요란한 휴대전화 벨소리까지 더해졌다. 작품의 핵심 정서인 고독과 절망감에 몰입하려면 객석에서 분투해야 했다.

 

지난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복귀 무대에서는 기침 소동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날 공연은 손가락 부상으로 무대를 떠났던 정경화가 12년 만에 런던에서 여는 독주회였고, 주요 언론들은 '전설의 귀환'이라는 화려한 제목을 붙여 소식을 전했다. 좌석은 전석 매진됐다.

 

그러나 독주회 직후 정경화는 기침하는 어린이 관객을 꾸짖었다며 도마 위에 올랐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첫 곡 모차르트 소나타 사장조 1악장이 끝난 뒤 기침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던 정경화는 연주를 재개하려는 순간 한 아이가 밭은 기침을 하자 옆자리에 앉은 아이 부모에게 '좀 더 큰 다음에 데려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여파는 컸다. 여러 언론들이 머리기사로 다뤘고 댓글과 블로그에서의 논쟁도 뜨거웠다. 일부는 정경화가 관객에게 쌀쌀맞게 핀잔을 줬다며 비난했다. 객석 분위기가 경직되는 바람에 이후의 연주를 마음껏 즐기기 어려웠다는 불평조의 리뷰도 나왔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 부모가 기침하는 아이를 공연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 기침을 참기 위한 청중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무신경하게 터진 기침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경화뿐은 아니다. 헝가리 출신의 거장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도 지난해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앙코르 곡을 연주하는 도중 한 관객이 요란하게 기침하자 "나는 지금 당신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망치지 말라"며 나무랐다.

 

■ '침묵의 순간'을 지켜라

 

생물학적 반응인 기침은 휴대전화 벨소리와 달리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지만, '침묵의 가치'에 공감하고 이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그나마 효과를 발휘한다.

 

영국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는 "위대한 음악이란 침묵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소리"라고 말했다. 특히 몇몇 곡에서는 '침묵의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말러 교향곡 9번이 대표적이다. 청중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한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과 뉴욕 필의 음악감독 앨런 길버트도 말러 교향곡 9번 4악장 만큼은 청중에게 기침조차 억제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알려진다.

 

외국 공연장에서는 로비에서 기침완화용 사탕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부터 예술의전당이 콘서트홀 로비에 사탕을 비치하고 있다. 공연 시작 전 안내방송에 '기침을 참아달라'는 내용을 넣기도 한다. 한 공연 기획사는 연주곡 해설책자 한쪽에 '목이 간지러울 때 손가락으로 목젖 부위를 가만히 누르면 기침 증상이 호전된다'는 정보를 안내하고 있다.

 

복귀 무대에서의 '기침 소동'이 벌어진 지 일주일 뒤 정경화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나는 언제나 어린이 청중이 내 연주회에 오는 것을 환영해왔다'는 제목의 해명글을 직접 썼다. 그는 "콘서트홀은 현대 사회에서 어떠한 방해도 없이 앉아서 몰입하고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평화의 낙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젊은이들이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소민 객원기자somparis@naver.com

 

http://m.media.daum.net/m/media/culture/newsview/20141216090009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