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음(原音) 시대] 파르르 손 떨며 바늘 얹는 재미 … 20~30대도 알아챘다

2013. 4. 30. 13:51LP & CD



<상> 다시 부는 LP 열풍 - (하) 깎임이 없는 소리

디지털 음악보다 생동감 뛰어나 옛 명반 이어 신보도 LP로 제작

공장 다시 문 열고 감상 홈피도 생겨 … 작년 미국선 새 앨범 460만장 팔려

음악의 원형, 원음(原音)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가벼운 소리가 득세한 디지털 시대, 즉 CD에서 압축된 mp3로, 심지어 저장할 필요도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잡은 세상에 대한 문화적 반란이다. 크게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요, 작게는 보다 자연스런 음악에 대한 갈증이다. 음악은 소장하는 게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는 각성도 포함됐다. 클래식·대중가요 구분 없이 불어 닥친 '원음 시대' 트렌드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국내 유일 LP 공장인 엘피팩토리 이길용 대표가 시험 제작된 컬러 LP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판 위에 새겨진 건 가수 패티김의 데뷔 시절 모습이다. 이 대표는 “컬러 LP가 주를 이루는 일본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직경 30㎝의 커다란 음반, LP(Long Playing) 음악이 돌아왔다. 일부 마니아만의 전유물이었던 LP문화가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이제 LP는 더 이상 주머니 두둑한 중장년층 음악애호가만의 고급 취미가 아니다.

 일례로 유명 LP바인 '트래픽'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1호점에 이어 몇 달 전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2호점을 열었다. 90년대 댄스음악을 LP로 틀어주는 '밤과 음악 사이' 클럽은 전국적 체인을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다. 10여 년 전통의 LP바 서울 서교동 '곱창전골'엔 “여기선 춤을 추실 수 없습니다”란 안내문이 잠시 붙기도 했다. LP 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20~30대의 문화가 전통의 LP바에까지 스며든 탓이다.

 ◆양평 LP바에 가봤니=SBS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는 1년째 매주 수요일 '양평 LP바'란 코너에서 LP로만 음악을 틀어주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인 하세가와 요헤이의 한국 이름 '김양평'에서 딴 코너명이다. 하세가와 요헤이는 소장하고 있는 7000장 가량의 LP에서 선곡할 음악을 고른다.

 SBS는 이 코너를 위해 LP플레이 장비도 구입했다. 지글거리는 LP 소리에 매료된 코너 마니아가 “이 코너에서 들은 곡을 CD나 mp3로 들었는데 절대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후기를 올리곤 한다. 장기하의 젊은 팬들까지 LP 문화에 젖어들게 하는 셈이다.

 문화평론가 김갑수씨는 “LP 애호가의 대다수가 향수 때문에 몰두한다. 새로 진입하는 이들은 물건의 귀중함에 대한 열망이 있는 이들이다. 디지털이나 CD는 언제든 복제가 가능하지만 LP는 소유하고, 스크래치가 나고, 닦고, 손때 묻는 훼손 과정에서 유일본이 된다. CD보다 크고 만질 때 정성이 들어가 더 가치를 높여준다”고 말했다.

 LP와 CD의 음질에 대한 우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영혁씨는 “CD가 처음 나올 땐 LP를 능가하는 음질이라고 홍보했지만 사실 CD는 디지털에서 완성된 매체라고 할 수 없다. CD로는 스튜디오에서 만든 사운드의 맛을 낼 수 없다. LP는 단점이 많긴 하지만 아날로그에선 완성된 매체고,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사운드의 경우 LP가 생동감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LP로 다시 만나는 명반=지난해 국내 LP 시장엔 큰 변화가 있었다. 유니버설 뮤직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베를린 필하모닉(지휘 카라얀)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앨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의 앨범 등의 LP를 독일에서 들여와 발매했다.

 국내 LP제작사 키오브는 세계 어디서도 LP로 제작된 적 없는 90년대 이후 명작을 LP로 제작하는 프로젝트 'Play 33 1/3 시리즈'로 팻 메스니·찰리 헤이든·마이클 브레커·허비 핸콕 등을 제작했다.

 키오브 서보익 대표는 “망하지 않으면 이어서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팻 메스니는 한 달 만에 매진되는 등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기도 김포에는 '엘피팩토리'라는 LP공장이 문을 열었다. 마지막 LP공장이었던 서라벌레코드 공장이 폐업한 2005년 이래 8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패티김·김광석·들국화·봄여름가을겨울·2AM·나얼·김C·이승열·조권·임지훈·하동균·김두수 등 중견 가수부터 아이돌까지 LP 발매 행렬에 동참했다.

 아이돌 가수들의 LP는 '원음'을 향한 욕구라기보다 '기념품'을 소장한다는 성격이 강하다. 어차피 CD로 음악을 듣지 않지만 '팬심'으로 CD를 구매하는 팬들에게 사이즈가 큰 LP는 더 특별한 기념품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19집 앨범 '헬로'를 10년 만에 내놓은 조용필도 신보를 LP로도 발매할 예정이다. 이에 맞춰 턴테이블 특가전까지 마련한 서울 용산 아이파크 백화점 측에 따르면 1~2년 전만 해도 한 달에 2~3대 정도 나가던 턴테이블이 최근 들어 20~30대까지 팔린다고 한다. LP 감상 인구가 그만큼 늘고 있다는 뜻이다.

 LP 바람은 온라인에서도 불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유성기·LP음악을 복각해 스트리밍하는 음악 감상 사이트 '퐁키(www.ponki.kr)'가 지난달 문을 열었다. 한 달 만에 500여 명이 가입했다.

 사이트 운영자 김광우씨는 “중장년층이 LP나 유성기의 소리를 찾는 건 어릴 적 들었던 음악의 원형질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라면, 아날로그 소리를 접한 경험이 없었던 젊은 층에게 LP는 새로운 소리에 대한 탐구”라고 말했다.

 ◆20~30대가 주도하는 LP문화=다음 달 25일 서울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제3회 서울 레코드페어가 열린다. 90년대의 걸작이라 불리는 이상은의 '공무도하가', 미선이 1집 '드리프팅', 브로콜리 너마저 '1/10', 이이언 '길트 프리', 조원선 '스왈로우',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LP로 재발매된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김영혁씨는 “레코드 페어의 주 관객층은 20~30대다. 1, 2회 행사에서 처음으로 LP를 구입한 이들도 많았다. LP는 더 이상 구닥다리가 아닌 동시대의 음악매체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이미 LP시장이 급속하게 커가고 있다. 미국 내 음반 판매를 공식 집계하는 사운드스캔에 따르면 2012년 미국에서 신규 제작된 레코드가 460만 장 팔렸다. 2011년(390만 장)에 비해 19% 증가한 수치로 5년 연속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1993년 판매량이 30만 장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성장세다.

 특히 비틀스의 '애비 로드'를 제외하곤 잭 화이트의 '블런더버스', 2013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멈포드 앤 선스의 '바벨' 등 신작이 10위권에 포진해 있다. 신곡의 주 소비층인 10대~30대가 LP 애호가로 자리잡았다는 뜻이다. 성장속도만 놓고 보면 LP는 CD의 미래인 셈이다.

글=이경희·강기헌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경희.강기헌.권혁재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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