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녹음기술 높여 서양 클래식과 겨루게 할 터”

2012. 2. 21. 07:47오디오&AV

ㆍ그래미상 최고 기술상 받은 녹음 전문가 황병준씨

“1997년 버클리음대 입학을 위해 제출한 에세이에 10~15년 후 꼭 그래미상을 받겠다고 썼는데 기적처럼 그 꿈이 이뤄졌습니다.”

황병준 사운드미러 코리아 대표(45)는 그래미가 인정한 녹음 기술자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5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는 한국인 최초로 클래식 앨범 부문 최고 기술상을 받았다. 그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긴 음반은 사운드미러 대표 존 뉴튼과 공동작업한 미국 작곡가 로버트 알드리지의 오페라 <엘머 갠트리>다. 엄밀히 따지면 그래미상과의 인연은 이번이 두번째다. 2008년에도 그가 어시스턴트로 참여한 클래식 앨범 <수난주간>이 최고 기술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공식 수상자 명단에는 뉴튼만 오르는 바람에 그는 시상식 단상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 16일 서울 양재동 사운드미러 코리아 사무실에서 황 대표를 만났다.

“보통 녹음이라고 하면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을 연상하지만 제가 하는 녹음은 필드 레코딩입니다. 즉 콘서트홀이나 교회, 성당 등 현장의 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담는 거죠. 많은 장비를 설치해야 하고, 잡음 등을 컨트롤하기 어려워도 훌륭한 연주라면 넓은 현장 녹음이 비좁은 스튜디오 녹음 소리보다 월등히 좋습니다.”


질 높은 음반 녹음은 음악과 녹음기술 두 가지를 동시에 알아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그가 지나온 길은 ‘운명적’이다.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그는 전축이 있었던 외가와 피아노 선생이던 이모 덕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팝 등 음악과 가까워졌다. 피아노 연주는 물론 교회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했다. 고교시절 용돈은 모두 클래식 카세트테이프 사는 데 썼고 음악감상실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재수 끝에 선택한 대학 전공은 전기공학(서울대 87학번)이었다. 영양군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로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기술임원(CTO)이 된 김명호 MS 상무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어려서부터 친했던 명호형이 공학을 하는 것을 보고 동경심에 공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석사까지 마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박사과정에 합격해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는 곧 마음을 바꿨다.

박사과정 대신 1년 과정의 직업학교뉴욕의 오디오학교에 갔다. 버클리음대 뮤직 앤드 엔지니어링과에 입학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난 1997년이다.

“미국에 가 보니, 당시 시국문제로 고뇌하던 한국 학생들과 달리 미국 학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어요. 문화적 충격을 받았죠. 제가 여기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따면 교수나 연구원으로 안정적 삶은 살겠지만, 신나는 삶은 아니겠다고 판단했어요. 제가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 싶은 일은 음악이었죠. 여기에 제 전공과도 무관치 않은 녹음기술을 접목키로 한 거예요. 대학에서 밴드부 활동을 했는데 당시 ‘야메’로 테이프를 만들어 팔면서, 해외 유명 레코드회사에서 녹음한 클래식음반의 음질은 좋은데, 왜 우리가 한 건 안 좋을까 궁금했거든요.”

교수 소개로 존 뉴튼이 대표로 있는 사운드미러에서 한 인턴생활은 그의 인생에 ‘절호의 기회’가 됐다. 요요마,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음반 작업을 한 미국 굴지의 녹음 회사였기 때문이다. 초반에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지만 그는 이곳에서 필드 레코딩의 많은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1999년 귀국한 그는 2000년 사운드미러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수원시향, 부천시향, 신영옥, 김대진, 조수미, 손열음, 정명화 등의 클래식 음반뿐 아니라 김장훈, 윤도현, 정태춘, 전인권, 조관우, 자우림 등의 가요 음반, <마리이야기> <장화홍련> <말아톤> <마더> <해운대> 등 영화 OST 음반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관심은 국악에 꽂혔다. 황병기, 신영희, 임동창 등 내로라하는 국악인의 소리를 한옥 등에서 담아냈다. 특히 지난해 송광사 스님들의 새벽 예불을 담아 직접 그가 제작까지 한 앨범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올해 그래미상에 도전했으나 아깝게 탈락했다.

그는 “그간 국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녹음과 포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서양 음악인들도 ‘판타스틱!’을 연발할 만큼 산조 등 국악은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양 클래식과 달리 국악은 세밀한 것까지 기록한 악보가 없어 제자들이 한 소절씩 배우는 식으로 전승받는데, 명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녹음으로 우리 소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원문 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202113255&code=10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