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 실체 드러날까

2010. 6. 21. 20:20역사

경주평야의 목관묘


경주 탑동 목관묘, 건국시기.실체 담은 판도라 상자 열 듯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신라 역사, 특히 그중에서도 건국 시기와 그 주축 세력을 이야기할 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가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조사성과가 잘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분명히 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에 경주 일대 6촌(六村)의 촌장이 합의 추대하는 형식으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신라를 건국했으며, 그때 혁거세가 터전을 닦은 곳이 경주 남산 자락인 도당산과 오릉(五陵), 그리고 나정(蘿井)과 창림사(昌林寺) 터 일대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이 땅에 근대적 방법의 역사학을 처음 도입한 일본인 학자들은 삼국사기 중 신라 건국 초반기 무렵의 기록은 믿을 수 없다며 신라가 실질적으로 건국한 시기를 서기 400년 무렵으로 끌어내렸다. 이런 영향에서 신라가 제대로 된 국가체계를 갖춘 왕국이 된 시기가 서기 3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다는 견해가 현재도 득세를 이루는 실정이다.

이런 견해는 경주 일대 고고학적 발굴성과와도 대체로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됐다.

왕국의 출현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적어도 경주평야 일대에서는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삼국사기가 말하는 신라 건국 무렵(기원전 57년) 왕의 등장을 직ㆍ간접적으로 지지할 만한 고고학적 발견으로는 경주 사라리 130호분과 경주 조양동 38호분 발굴 정도가 꼽혔다.

이들 목관묘는 출토 유물로 보아 축조 시기가 기원전 1세기(조양동), 혹은 기원후 2세기(사라리) 무렵으로 추정되는 데다, 무엇보다 그 출토 유물이 양적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질적 측면에서도 같은 시대 여타 목관묘(木棺墓)를 압도한다.

이 때문에 심지어 신라가 설혹 기원전 1세기 무렵에 건국했다는 기록을 믿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태동한 중심지는 경주평야가 아니라 사라리와 조양동 유적이 있는 경주분지 외곽 지역이라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통용되고 있다.

최근 발굴면적이라고 해봐야 790㎡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주택 예정지인 경주시 탑동 21-3ㆍ4번지에서 출현한 목관묘(木棺墓)가 단순히 2천년 전 무렵 무덤 하나를 발견한 데 그치지 않는 의미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탑동 목관묘 출토유물


이 목관묘는 우선 출토유물로 볼 때 만든 시기가 기원전 1세기 중ㆍ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했다는 바로 그 시기에 해당한다.

나아가 이 무덤은 출토유물로 볼 때 왕(王)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왕이 있었다면 그런 왕을 보좌한 상당한 세력을 갖춘 유력 지배계층의 사람이 묻힌 곳이라는 추정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는 옻칠을 입힌 나무 칼집에 동검(銅劍)이나 철검을 끼운 칠초동검(漆鎖銅劍)과 칠초철검(漆鎖鐵劍), 철모, 칼자루 끝장식인 검파두식(劍把頭飾), 청동 팔찌 등이 발굴됐다. 상당한 부와 권세를 자랑한 사람이 묻힌 곳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이 목관묘가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까닭은 발견된 위치가 경주평야라는 데 있다.

신라 고고학 전공인 송의정 국립김해박물관장은 18일 "박혁거세가 대표하는 신라 건국 주체와 관련한 고고학적 발굴은 2000년대 조사한 나정 유적밖에 없었다"면서 "문헌기록과 이번 발굴성과를 종합할 때, 탑동 목관묘는 신라 건국 주축 세력의 유력 지배자가 묻힌 곳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송 관장은 "사라리 130호분이나 조양동 38호분과 같은 위상을 지닌 목관묘가 경주평야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흔적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아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이번 탑동 발굴은 그런 의문을 상당히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탑동 목관묘와 인접한 지점에 있는 박혁거세 무덤이라는 오릉은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그 형식이나 축조 연대를 전혀 알 수 없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 학자들이 주장해온 신라 건국시기에 맞춰 4세기 이후 유행하는 적석목곽분이나 6세기 이후 등장하기 시작하는 석실분 형태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탑동 발굴을 통해 박혁거세의 묘도 이번과 같은 목관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주평야에서 신라 건국기 목관묘가 발견된 것은 이제 겨우 한 곳에 지나지 않지만 혁거세의 근거지로 지목되는 탑동 일대에서 이전까지 단 한 차례도 발굴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발굴을 계기로 신라 건국의 비밀을 담은 판도라 상자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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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원문 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3&sid2=245&oid=001&aid=0003338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