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의 기쁨"과 음반의 슬픔" 바츨라프 노이만-게반트하우스

2009. 6. 6. 01:27LP & CD

스메타나  나의 조국
SMETANA  MEIN VATERLAND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
GEWANDHAUSORCHESTER LEIPIZIG

지휘: 바츨라프 노이만
DIRIGENT: VACLAV NEUMANN

ETRNAR
Stereo 8 25 931-932
'73년 1월 issued
VEB Deutsche Schallplatten Berlin DDR

 

 

오늘 나는 횡재했다.

 

나는 횡재를 몹시 자주 하는 편이다^^.

내 주변에는 나를 횡재시켜주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한둘은 따라다닌다.

서울..., 안양 사는 절친한 동호인 이모씨라고..., 이 친구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게 잊을 만하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음반을 공짜로 보내주기 때문이다.

공짜인데도 이 음반들은 기막힌 연주들뿐이다.

이 친구가 내게 에떼르나 레이블을 가르쳐주기까지 했으니 어찌 보배로운 친구라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이 야심한 밤에 귀찮기만 한 글을 열심히 올리고 있는 까닭은 뭘까?

그야 불을 보듯 뻔 한 일이 아니겠는가!

기가 막혀 음악이 들리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마음에 드는, 내 취향에 꼭 맞는 음반을 오늘 또 공짜로 받아서 듣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음반의 기쁨"과 "음반의 슬픔"이 교차하는 두 사람이 있다.

그 한 사람은 경주에 사는 박모씨, 문제의 이 음반을 공짜로 받은 사람이다.

당연, 음반의 기쁨에 겨워 허우적대고 있다.

또 한 사람..., 서울 사는 이모씨, 운명의 이 음반을 별 볼일 없다고 박모씨에게 공짜로 보내줘 버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한 사람이다 ㅎㅎ.

내일, 이 글을 읽는 순간부터 음반의 슬픔에 빠지는 것은 크라이슬러가 정해놓은 순리이다^^.

 

예전부터 노이만 연주는 드보르작 심포니 같은 보헤미안 분위기의 음반뿐만 아니라 모든 연주를 좋아했다.

까닭은, 그만의 신선함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에다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개방적인 곡 해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반트하우스의 "나의 조국"을 들어보고 노이만에 대한 그러한 인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나는 노이만이 이토록 자연 친화적인 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명색이 음반 감상 경력 30년짜리가 말이다.

노이만과 게반트하우스의 "나의 조국"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흐르는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몰다우강"에서 이런 특징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노이만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여느 지휘자처럼 피아노로부터 단숨에 포르테와 포르티시모로 치닫지 않는다.

알레그로에서 프레스토까지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강가에 박혀있는 작은 돌 한 조각이라도 휩쓸려 내려갈까 조심스러워 하듯 말이다.

하지만, 흐르는 물줄기는 웅대하기만 하다.

굽이치는 물줄기에서는 격정적이고 싶을 지휘자의 욕구를 무욕무심의 부처님과도 같이 다스리며 유유히 나아가는 것이다.

너무나도 무리 없는 연주, 전혀 바쁜 것 없는, 한 마디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하기야, 자본주의 경쟁체제가 아닌 러시아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연주되고 녹음된 음반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징이기는 하다.

그러나 에떼르나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에떼르나야 말로 내 즐거움이자 행복의 일급 도우미인 셈이다.

에떼르나가 늘 그렇듯 음질도 좋고, 투명도와 홀 톤의 울림은 특별히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오늘 밤은 새벽 세 시까지 "음반의 기쁨"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