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 조재형 9/23

2021. 10. 3. 07:52괜찮은 글



여행 가방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은커녕 외출조차 쉽지 않은 시절

제 키보다 작은 가방 안에 갇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난
아홉 살 난 소년이 있다

죽음보다 더 무서웠을
가방에 갇혀 있던 공포의 일곱 시간은
칠 년 아니 칠십 년보다도 훨씬 길지 않았을까

자연을 마구 학대한 결과로 얻은
바이러스의 공포가 아무리 크다 해도
저만큼 잔인하기야 할까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을까를 또 생각하게 한
여행 가방은
이런 원통한 여행을 보내라고 만든 게
절대 아니다

......

저희 회원 조재형 시인께서 보내주신 세 번째 시집을 열어본 때는 우편으로 도착한지 십여 일이 지난 오늘이었습니다.

봉투를 열자 드러난 시집의 제목이 '여행가방', 바로 떠오른 내 정서는 그 흔한 '낭만적 여행'이었지요.

그러나 무책임한 내 마음을 탓한 것은 이 짧은 시를 반쯤 읽어나가면서였습니다.

그 한탄은 무서운 사건에 대한 공포로 시작하여 우리 인류의 범죄인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한 코비드19에게 짓밟힌 인간 삶이 겹쳐서 나 자신에까지 공포에 휩싸인 것은 일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공포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핸들을 잡고 시골길을 스쳐가다가 어느새 원성왕릉에 주차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시에 대한 이해는 일자 무식에 가까워서 뭐라고 느낌을 적기가 망설여집니다만, 조재형 시인님은 언어 표현에서 중의적(重義的) 활용과 지극히 섬세하고 해학적인 은유(메타포/metaphor)에 감동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순한 말 한마디가 시인님의 감성을 통과하면 놀라운 창조물로 환생되는 것이죠.

좌우지간,

저에게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시와 편지를 보내주신 조재형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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