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0. 05:07ㆍ신문&방송기사
[한겨레21] 2053년까지 중저준위·고준위 방폐장과 함께 사는 주민들…
소변에서 위험물질 삼중수소 검출
2005년 11월3일 경북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를 ‘축하’하는 경주시 관계자들의 카퍼레이드 모습. 시민과 악수하는 사람이 당시 백상승 경주시장이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2005년 11월3일 경북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를 ‘축하’하는 경주시 관계자들의 카퍼레이드 모습. 시민과 악수하는 사람이 당시 백상승 경주시장이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1년 11월 서울에서 난데없이 ‘방사성폐기물’이 출현했다. 노원구 아스팔트 도로에서 대기 중 자연 방사능 수치(140nSv·나노시버트)보다 10배 높은 방사선(1400nSv)이 측정되면서 생긴 일이다. 노원구가 철거한 폐아스팔트는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에서 방사성물질(세슘 137)이 검출돼 ‘저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됐다. 폐아스팔트는 노원구 관내 공릉동에 있던 한국전력공사 연수원으로 이동하려다 공릉동 주민들의 반발로 노원구청 주차장에 주저앉았다. 노원구 주민들은 이 꺼림칙한 골칫덩이를 경북 경주에 건설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으로 이송하라고 한결같이 요구했다. 노원구가 2012년 12월, 2014년 7월 경주 방폐장으로 폐아스팔트를 보낼 때 경주 방폐장은 준공도 안 된 상태였다. ‘방폐장 준공 전이라 안전성을 검증할 수 없다’며 방폐장 인접 주민들이 반발했지만, 결국 이송은 완료됐다. 폐아스팔트가 경주로 떠난 날 노원구는 “60만 구민과 함께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 방사성물질 떠안은 경주
중수로 원자력발전소인 월성원전 1~4호기에선 1기당 연간 9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배출된다. 경수로(20t)의 4.5배다. ‘중저준위 방폐장’에 보관 중인 중저준위 폐기물. 한겨레 김정효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중수로 원자력발전소인 월성원전 1~4호기에선 1기당 연간 9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배출된다. 경수로(20t)의 4.5배다. ‘중저준위 방폐장’에 보관 중인 중저준위 폐기물. 한겨레 김정효 기자
신용화(46)씨는 노원구 폐아스팔트를 떠안은 경주 양북면 봉길리 ‘방폐장’ 인접 마을에 산다. 지난 7월18일 <한겨레21>의 취재진과 만날 때,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서글픈 기색을 내비쳤다. “서울 엄마만 엄마가 아니잖아요.” 2010년 봉길리와 이웃한 양남면 나아리로 이사했고 5년 만인 2015년 11월, 신씨의 중2 아들 소변에선 10.5Bq(베크렐)/ℓ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삼중수소는 방사성물질이다. 양남면 나아리에는 국내 유일의 중수로 원전인 월성원전 1~4호기가 있다. 중수로 원전에선 경수로보다 삼중수소가 더 많이 배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경주는 원전뿐 아니라 ‘핵쓰레기’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다. 월성원전 1~4호기와 신월성원전 1~2호기를 합쳐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며, 전국에 딱 하나 있는 중저준위 방폐장과 ‘건식저장고’(1174호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참조)도 있다. 건식저장고는 월성원전 1~4호기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즉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곳이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강한 방사선이 새나오기 때문에 수백m 지하 안전한 곳에 고준위 방폐장을 만들어 3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경주가 대규모 핵발전단지가 있는 다른 세 지역과 달리 독특한 탈핵운동 양상을 보이는 이유다.
경주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가 선정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 이곳에 임시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그쪽으로 옮겨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40년이 흘렀지만, 방폐장 설치 문제는 지금껏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모래성 같은 에너지 국책사업의 민낯을 만나는 곳이 경주다. 정부는 지난해 5월 확정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을 통해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시점을 2028년, 고준위 방폐장 운영 시점을 2053년으로 정했다. 그와 함께 월성원전의 건식저장고를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으로 경주 봉길리와 나아리 주민들은 2053년까지 중저준위 방폐장뿐 아니라 고준위 방폐장을 끼고 살아야 하는 최악의 운명에 놓이게 됐다. 정현주 경주시의회 의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할 때 2016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경주에서 빼낸다고 약속했다”며 “현재 상태로라면 월성의 건식저장고는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영구 처분 시설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7월17일 기자와 얼굴을 마주한 신용화씨는 자신을 ‘이등시민’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원전도 없고 방폐장도 없는데 애들 학교 급식 재료에 방사능 검사를 필수로 하는 조례도 만들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애들 몸속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돼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남들이 위험하다고 버리는 방사성물질 쓰레기나 받아야 하니 서울 시민만 국민인지….”
방폐장 산 너머 시가지 주민들의 찬성
봉길리와 나아리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7월 두 차례 이곳을 방문하면서 만난 주민들 가운데 2005년 11월2일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한 주민은 없었다. 당시 4개 시·군(경북 경주·영덕·포항, 전북 군산)을 대상으로 실시된 방폐장 부지 선정 주민투표에서 경주는 찬성률 89.5%로 군산(84.4%), 영덕(79.3%), 포항(67.5%)을 제쳤다. 이날 밤 백상승 경주시장은 ‘샴페인’을 터트렸고, 이튿날 국책사업유치추진단 관계자 등과 함께 경주 시가지에서 방폐장 유치를 ‘축하’하는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방폐장에서 500여m 떨어진 봉길해수욕장에서 30년째 횟집을 운영하는 사장 ㄱ씨가 말했다. “우린 반대했지. 찬성한 것은 산(토함산) 너머 그쪽 사람들이야. 이 동네는 다 반대였어요. 여기는 경주시장 별로 안 좋아합니다. 우리한테 신경을 안 써.” 그 말을 듣던 ㄱ씨의 팔순 노모는 “갈수록 사람이 줄어든다”고 한탄했다. 7월17일 방문한 봉길해수욕장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인 ‘문무대왕릉’이 있는 유적지답지 않게 한산한 모습이었다. 해변을 오가는 관광객이라곤 20명 남짓이 전부였고, 바다를 따라 늘어선 횟집 10여 곳 가운데 손님이 든 곳은 한두 곳뿐이었다. ㄱ씨의 노모는 해수욕장에서 인적이 사라지는 이유를 “방폐장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미역도 방사능 있다고 사지 않는다. 화장실에 와서 소변이나 보지 물 하나 안 사가요.”
봉길해수욕장 입구에서 좌판에 미역과 건어물을 늘어놓고 파는 주민 ㄷ씨는 “일주일 동안 돈 구경을 못했다”고 말했다. ㄷ씨는 소유하던 땅이 방폐장 부지로 수용돼 보상금을 받았다. 그 얘길 묻자 “땅을 많이 줘야 돈도 많이 주지. 땅 조금밖에 안 줬는데 많이 주나”라며 역성을 냈다. 원전·방폐장·송전탑 등 국책사업으로 토지가 수용되면 일확천금이 생기는 줄 알지만, 사실이 아니다. 봉길리 이장 김아무개씨는 “여긴 사람 살 데가 아니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7월31일 나아마을에서 만난 아파트 단지 경비원 ㄹ(68)씨도 자신이 소외되고 있다고 느꼈다. “외부인들 봤을 때는 경주 사람들이 투표해서 (방폐장이) 들어왔다 하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당시 양남면·양북면·감포읍 세 마을 주민 다 합쳐도 1만5천 명이에요. 산 너머 시가지 안쪽에 있는 경주 시내 인구 20만 명을 어떻게 이겨요, 그쪽이 다 찬성하는데.” 그는 월성원전이 있는 나아리에서 4km 떨어진 하서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ㄹ씨는 방폐장을 두고 경주시와 세 마을의 찬반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 “그쪽(경주 시내) 사람은 돈 번다. 지역협력기금 받아서 경주 부시장이 집행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방폐장을 받아들인 경주에 3천억원의 특별지원금과 한수원 본사의 경주 이전이라는 ‘떡고물’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방폐장이 입지하는 해변 마을 사람들이 본 혜택은 전기요금 2500원과 TV수신료 2500원 인하를 합쳐 한 달 5천원이 전부다. 경주시는 이마저도 올해부터 특별지원금 원금 소진을 이유로 지원 대상을 ‘전 시민’에서 ‘취약계층’으로 축소했다. 방폐장 인접 마을인 봉길리·나아리 주민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이런 사정을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어떻게 다 알겠어요. 그냥 주민이 찬성해서 방폐장 지었다고 하지. 그거밖에 더 알아요. 속사정은 모르잖아.” ㄹ씨가 말했다.
방폐장 주민들 소변에서 삼중수소 검출
7월17일과 31일 두 차례 찾은 나아리에선 영업하는 가게만큼 폐업한 가게가 많았다. 마을에서 활기를 찾긴 어려웠다. 양남면사무소에 따르면, 2010년 1009명이던 나아리 인구는 2017년 6월 현재 803명으로 줄었다. 2층 건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강수연(51)씨는 “오래전 부동산에 내놓은 가게가 여태 안 팔린다”고 낙담했다. 한국 사회의 탈원전 논의에 불을 댕긴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2016년 9월12일 경주 지진이 공교롭게도 ‘탈원전’을 꿈꾸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때 우리 집에서 점심 많이 먹었던 GS건설 소장이 원전 건설 끝나기 전에 가게를 내놓으라 했어요. 소장이 소개해준 분이 월요일에 오기로 했는데, 금요일(3월11일)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거예요.” 매각 기회는 그로부터 4년 뒤 다시 찾아왔다. 하필 구매 희망자가 오기로 한 전날 경주 지진이 터졌다. 그는 “지진 나는데 누가 펜션을 하냐”며 계약을 물렀다.
월성원전 4기에 마을의 ‘노른자 땅’을 빼앗긴 나아리엔 2014년 8월25일부터 이주대책위원회(대책위)가 활동하고 있다.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고 홍보하는 월성원자력홍보관 왼쪽에 ‘여러분은 지금 방사능 피폭 지역에 들어오셨습니다’란 펼침막을 걸고 있는 대책위 농성 천막이 있다. 신용화씨는 “너는 전자우편 같은 거 보낼 수 있지 않냐”는 어르신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대책위 ‘사무국장’이 됐다. 신씨와 함께 대책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황분희(69) 부위원장은 “아무래도 시골이라 여자가 위원장 맡는 게 어색”해서 부위원장을 맡았다. 7월17일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자신들의 ‘무지’를 고백하며 얘기를 풀어갔다.
“2010년 남편 회사 때문에 이사했어요. 그때는 겉만 보니 해안도로가 있고 정말 좋았어요. 친환경에너지라고 하니까 방사능 이런 건 모르고 그냥 믿었어요. 원전 앞쪽 바다에서 해무가 쫙 밀려오는 것도 그렇게 멋졌는데…. 그게 다 방사성물질이잖아요.”(신용화 사무국장)
“남편 건강 때문에 이사를 왔거든. 그때만 해도 매스컴에 많이 안 나왔어. 그냥 깨끗한 에너지라고 했지. 원전이 들어서면 무조건 잘살게 해준다 하니까 바깥에서는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그랬지. 그때 밭에서 일하다 보면 ‘펑’ 하고 버섯구름이 원전에서 나왔어. 핵폭탄 떨어질 때 생기는 버섯구름 있잖아. 그게 그렇게 보기 좋더라고. ‘아, 또 연기가 난다’ 좋아했어.”(황분희 부위원장)
황 부위원장이 ‘보기 좋다’ 했던 구름은 월성원전에서 뿜어내는 삼중수소였다. 2015년 11월 나아리 주민 40여 명의 소변을 조사한 결과 모든 주민의 소변에서 최소 4.0Bq/ℓ에서 최대 157Bq/ℓ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황 부위원장의 5살 손자의 소변에서도 17.5Bq/ℓ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가끔 우리 애가 재롱부릴 때, 앞으로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마음이 무너져내린다”고 말하던 황 부위원장이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삼중수소로 DNA 손상 가능
주민들은 월성원자력본부를 상대로 왜 사람마다 검출되는 양이 다른지, 이게 연령과 상관있는지 등을 물었다. 월성원자력본부는 “기준치 이하라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탈핵에너지교수모임 대표)는 삼중수소에 대해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치는 그 이상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관리 기준치지 인체 건강과 관련된 의학적 기준치가 아니다. 의학적 안전 기준치는 0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몸속에 들어간 삼중수소는 DNA까지 침투한다. DNA 속에서 붕괴하면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는데 그 과정에서 DNA가 손상될 수 있다.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유전병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성원전 4기에는 2007년 7월에야 삼중수소제거기가 설치됐다. 한수원은 제거기 설치 전후로 배출량이 약 57% 감소했다고 밝혔다. 물론 제거기 설치 미비로 수년간 더 많은 삼중수소에 노출됐던 주민들에 대한 고려는 없다.
경주(경북)=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김보현 교육연수생
http://v.media.daum.net/v/20170808144805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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