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9. 14:07ㆍ목공
풍경에 취해 풍경이 되어버린 창
창과 문은 액자만 만들지 않는다. 스스로 풍경요소가 되기도 한다. 창이 특히 그렇다. 미닫이창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문짝이 창틀 안쪽으로 밀고 들어와 풍경을 가릴 경우 이 부분을 액자로 볼지 풍경요소로 볼지의 문제가 생긴다. 열쇠는 창호지가 쥐고 있다. 창호지가 빛을 받아 반투명 막이 되고 창살문양이 드러나면 창은 액자로만 머물지 못하고 그 자체가 풍경요소가 된다. 마치 두 장의 풍경을 겹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창 스스로 풍경이 되다’는 창이 풍경에 틀 짜기를 가하고 풍경을 재단하는 일을 하다 풍경에 취해 못 참고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창 스스로가 하나의 풍경요소, 즉 인공적 풍경요소가 된 것이다. 창살문양은 창을 풍경요소로 둔갑시키는 일차적 역할을 한다. 문양 자체가 강한 조형 형식을 띠면서 액자 이상의 기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창살문양이 풍경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수직-수평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스스로 감상의 대상으로 변모해야 한다. 하나의 ‘보기 좋은 장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마음에 감흥이 일어나는 감성작용이 실려야 된다. 이것을 해주는 것이 창호지이다. 창호지는 중성적 건축형식인 창살문양을 마음의 감성작용에 대응시켜 심미 요소로 둔갑시킨다. 인공 형식미에 온기를 실어 생활 속 일상가치를 상징하게 만든다. 이런 도움 덕에 창살문양은 풍경요소가 될 수 있다.
창호지는 반투명이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창살문양의 조형성을 잘 드러낸다. 불투명하면 벽의 연장으로 읽힐 뿐 스스로 풍경요소로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풍경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유리처럼 투명하면 바깥 풍경요소 위에 셀로판지를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일 뿐 스스로 조형 형식을 갖추지 못한다. 풍경요소가 되지 못하고 바깥 풍경요소 위에 묻은 얼룩처럼 느껴진다. 풍경이 되기에는 과하다. 반투명인 상태에서 창살문양은 온전히 스스로 풍경이 될 수 있다. 창살문양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상태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바깥의 바깥 풍경요소 위에 겹쳐지지 않고 병렬을 이룸으로써 스스로 풍경이 될 수 있다.
빛의 종류와 세기 등에 따라 창과 문양의 분위기나 모습이 변하는 것도 창호지의 활약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다양성이 바로 창살문양에 감성작용을 실어 내주는 기능을 한다. 하루 시간의 흐름, 날씨, 계절 등이 기준이다. 바깥의 빛 사정에 따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하며 다양한 감성작용을 일으킨다. 진짜 풍경요소보다 나중에 더해진 인공 풍경요소가 더 심하게 변하니 그 그림은 실로 모든 종류의 인간 감성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먼동이 트는 아침의 청회색에서 시작해서 대낮에 직사광선을 받은 뽀얀 우윳빛, 그리고 해지는 석양의 붉은색에 이르기까지.
창호지로 창살문양에 감성을 싣다
한 마디로 창호지의 활약 하나만으로 독립적인 풍경작용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창호지, 즉 한지를 쓴 이유이다. 한지는 엄밀히 얘기하면 건축 재료가 아니다.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창과 같은 외부마감에는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쓴 것은 창에 감성작용을 실어 풍경요소로 만들려는 목적이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집 전체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만들어 집과 감성으로 교류하려던 목적이었다. 집 스스로 풍경을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집에 그림을 가득 채우려는 목적이었다. 결국 한옥에 산다는 것은 큰 그림 하나를 생활 속에 이고 사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시시각각 변하면서 다양한 풍경화를 선사했다.
물론 창호지를 쓴 것은 유리산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후진성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창은 건물의 여러 부분 가운데 재료 사용에 제한이 많은 곳이다. 시야와 조도 등을 위해서는 투명성을, 방음과 단열 등을 위해서는 내구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이 두 조건은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유리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현실성이 높은 재료임에 틀림없다. 실용적 문명인 서양은 유리를 선택했고 감성적 문명인 우리는 한지를 선택했다.
한지가 전통 필기도구인 지필묵(紙筆墨)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한지는 글씨 쓰는 필기도구인 동시에 난초 치고 소나무 대나무 그리는 그림 재료이기도 했다. 창호지에 한지를 사용해서 풍경작용을 만들어낸 것은 곧 집을 한지 위에 단풍나무 그리는 풍경화에 유추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옛날 선조들은 정말로 집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정의했음에 틀림없다. 창 조작을 통해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다양한 풍경화를 집안 가득 담아놓고 살았다. 풍류의 극치요 예술의 극치이다. 창 만드는 건축행위가 붓 놀려 난초 치는 그림 그리기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니, 진정 풍류의 극치요 예술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창 스스로 풍경이 될 경우 창살문양과 창호지는 진짜 풍경요소와 중첩되면서 더 큰 풍경을 만들어낸다. 진짜 풍경요소가 수목, 꽃, 먼 산 같은 자연물이면 차경중첩이 되고 집의 일부분이면 자경중첩이 된다. 창은 인공요소이기 때문에 자연물과 어울릴 경우 자연과 인공의 어울림이라는 동양문명의 큰 특징에 귀속된다. 이때 창에 나타나는 문양은 자연을 정리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정리하되 정복 개념은 아니다. 집의 일부분과 어울리는 자경중첩에서는 인공성이 극대화된다. 풍경 전체에 인공질서가 가득 찬다. 사회를 향한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유교 형식미의 대표적인 예이다.
바깥 풍경과의 조화로운 어울림
창살문양을 풍경요소로 보지 않고 여전히 액자로 볼 수도 있다. 이때는 족자 (簇子)에 해당된다. 한국화의 족자에서는 그림 옆에 여백을 두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 별도로 문양을 넣거나 연하게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액자의 틀을 면적을 갖는 여백으로 키운 뒤 그림과 별도의 예술세계를 하나 더 만든 셈이다. 족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대입시키면 창 이외의 건축요소가 액자가 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기둥과 보, 서까래와 도리, 회벽과 천장 등 골조를 노출시켜 액자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솟을대문도 좋은 예이다. 스스로 하나의 완결된 건축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솟을대문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는 경우면 언제라도 족자가 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대문이나 중문은 이보다 못하지만 여전히 족자가 되기에 충분한 조형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한옥의 골조는 천천히 뜯어보면 족자를 생각하고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곳들이 많다.
왜 그랬을까.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는 뜻인데, 한 마디로 ‘바깥 풍경과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위해서이다. 집과 풍경, 사람과 자연, 안과 밖 등 흔히 이항대립으로 인식되고 있는 관계들 사이에 조화로운 어울림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에서 건물에 끊임없이 족자작용이 일어나게 했다. 한국화에서 족자는 이동과 보관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 일차적 목적이지만 하다 보니 그림과 일정한 심미적, 예술적 어울림을 얻어내는 데까지 나간 것과 같은 이치이다. 건축부재를 이용한 족자작용은 분명 집의 분위기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창 조작에 따라 분위기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창문 이외에 다양한 가능성을 추가로 갖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사용자의 마음에 부합되고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심리작용이었다.
다양한 풍경작용을 통해 마음과 감성의 변화에 합당한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조형 환경이 자신의 마음과 감성 상태와 합치될 때 행복을 느끼며 집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 액자는 한옥의 창과 문의 틀을 의미한다. 품격 있는 한옥을 구별해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집 안의 중요한 포인트에 풍경작용을 실어냈는지의 여부이다. 한옥을 짓고 살았던 조선 선비의 문화적 안목과 예술적 감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한데, 집 주인은 집 안 곳곳의 창과 문을 액자로 하여 수십 장의 풍경화를 장르별로 즐겼다. 창 하나에서 계절에 따라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내니 집안 전체는 하나의 큰 미술관이 된다. 그것도 액자 속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자연 미술관이 되는 한옥만의 심미적 전략이다.
- 이 글에서 풍경요소는 한옥에서 창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을 구성하는 개별요소를 의미한다.
- 이 글에서 풍경작용은 한옥에서 창을 통해 ‘풍경’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원리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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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풍경과의 조화로운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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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자는 한옥의 창과 문의 틀을 의미한다. 품격 있는 한옥을 구별해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집 안의 중요한 포인트에 풍경작용을 실어냈는지의 여부이다. 한옥을 짓고 살았던 조선 선비의 문화적 안목과 예술적 감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한데, 집 주인은 집 안 곳곳의 창과 문을 액자로 하여 수십 장의 풍경화를 장르별로 즐겼다. 창 하나에서 계절에 따라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내니 집안 전체는 하나의 큰 미술관이 된다. 그것도 액자 속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자연 미술관이 되는 한옥만의 심미적 전략이다.
- 이 글에서 풍경요소는 한옥에서 창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을 구성하는 개별요소를 의미한다.
- 이 글에서 풍경작용은 한옥에서 창을 통해 ‘풍경’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원리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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