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스튜디오 시스템-한영식 사장

2008. 1. 16. 15:37오디오&AV

(스테레오뮤직/중앙일보)

 

“가장 아름다운 울림을 듣는 것이 진정한 오디오의 즐거움이지요”  - 한영식 사장

 

 

현재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 클랑필름 오이로딘 406 ▶프리앰프 : 스튜디오 진공관 세트(텔레푼켄 V72+텔레푼켄 V103+텔레푼켄 U70+텔레푼켄 V72b+텔레푼켄 V74a+에크밀러 LSR형 볼륨) ▶파워앰프 : 텔레푼켄 V69A ▶포노 EQ 앰프 : EMT 139B/텔레푼켄 V72(라인앰프 개조품) ▶AD플레이어 : EMT 927 ▶톤암 : EMT 997 ▶카트리지 : EMT TSD15/EMT OFD25/EMT OFS25/EMT TMD25/바코 EMT TSD15/토렌스 MCH 2 ▶튜너 : R&S(로데 슈바르츠)

 

그 멜랑콜릭한 소리에 매료돼 독일 빈티지로 대전환하다

“LP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집중해서 듣는 것이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CD나 프리앰프 중에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저는 지금의 여기 이 소리에 귀가 젖어서인지 요즈음의 소리들은 부풀리고 과장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새로운 기계로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기계들이 계속 나와서 디지털음이 최고로 간다고는 하지만 결국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 쪽을 지향하는 게 아닐까요.”

이분이 말하는 지금의 이 소리란 빈티지 시스템에서 울리는 소리를 말한다. 가수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운드 이미지를 중시하는 애호가들이나 광대역의 치밀한 음질을 추구하는 오디오 애호가들에겐 다소 거부감을 줄 만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모름지기 오디오는 취향의 세계다. 소형 스피커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만 가지고 음악을 즐기든, 하이엔드 오디오기기를 장만해서 구극의 사운드에 몰입해 들어가든, 또는 수십년 전 만들어진 골동품, 그러니까 빈티지 기기들을 어렵사리 구해서 음악을 정성스럽게 재생해가며 만족하든, 우리는 오디오와 음악을 통해서 감동과 열락을 얻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오디오는 청각은 물론 경우에 따라선 마음의 귀까지 열어서 즐겨야 하는 감성의 세계다. 하이엔드를 끝없이 추구하던 이들도 언젠가 감성이 변하게 되고, 따라서 음영이 분명하고 중역이 충실한 소리 쪽을 더 선호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전까지 고루하고 답답하다고 경원시하거나 비난하던 빈티지의 세계로 자신도 모르는 새 빠져들지 누가 알겠는가.

일전에 일본의 오디오 평론가 스가노 씨는 오디오 애호가를 레코드 연주자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자신의 조건과 기량(기호)에 맞는 악기(오디오기기)를 가지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레코드)을 연주(오디오 재생작업)하며 즐기면 된다는 뜻일 게다.

빈티지음과 모노음까지도 사랑하고 있는 이분은 한영식 사장이다. 한 사장 역시 하이엔드의 음에 젖어 있다가 빈티지음으로 전향한 분이다. 지난호의 박상선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한 사장 또한 필자와 오랫동안 교우해온 동호인이다. 한 사장의 성품은 과묵하고 겸손하다. 오죽하면 빈티지 시스템으로 전향한 사실도 한참 지난 후에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려졌을 정도였겠는가. 그리고 다소 어눌한 언변이지만 자기 의사표현만큼은 분명하다. 또한 나이에 비해 때묻지 않은 동안이며 항시 얼굴엔 잔잔한 미소와 따뜻한 정감이 담겨 있다.

 

클랑필름 오이로딘에서 찾아낸 약간은 어둡고 우수어린 사운드

한 사장 댁은 서울 강남구 반포동에 있는 S아파트 3층. 이 아파트의 거실이 오디오룸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 벽면 전체가 레코드장이고, 거의가 LP로 들어 차 있다. 거실의 한쪽 면에 핀란드산 자작나무로 인클로저를 짜서 담록색을 칠했다는 클랑필름 오이로딘 스피커가 놓여 있고 그 맞은편에 프리앰프와 턴테이블 등이 있으며 파워앰프는 스피커 인클로저 뒤편에 세팅되어 있다.

─ 지난번, 그러니까 몇 년되었지요. 그때는 JBL 에베레스트 스피커에 마크 레빈슨 앰프를 매칭해서 듣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전체가 다 바뀌었네요.
“지금 이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한 지가 한 4년 되니까, 제법 오래되었지요.”

─ 사실 저도 마치 인생관이 확 변해버린 것처럼 대전환을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무슨 사연이나 계기가 있었습니까?

“한때 타노이의 모니터 레드, GRF 메모리, RHR 등을 쓰면서 타노이 스피커에 정이 들었었는데 단점이 한번 귀에 거슬리자 자꾸만 성격이 다른 기기에 관심이 가게 되더군요. 그후 JBL 에베레스트를 손에 넣는 걸 꿈꾸다가, 결국 들여놓게 되었지요.”

이번 인터뷰의 포커스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오디오기기 바꿈질을 하는 경우에도 그 동기랄까 나름대로의 변이 있을 수 있는데 스피커며 앰프 할 것 없이 모두 혁명이라도 하듯 바꿔치울 때는 뭔가 깊은 내막이 숨어 있을 법하고, 또 우리 오디오 애호가들은 그 점이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실지 누군가가 필자에게 왜 오디오를 일시에 확 바꿨느냐고 물어온다면, 순간 말문이 막혀버릴 것 같다. 기껏 왜 사느냐고 물으면 웃지요, 하는 식으로 살짝 웃는 걸로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인터뷰의 두번째 포인트는 빈티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의 경험담을 가능하면 자세하고 많이 얻어내었으면 하는 데 있다.

─ JBL 에베레스트에 마크 레빈슨 ML-7AL과 마크 레빈슨 ML-3, 여기에다 토렌스 프레스티지와 스투더 A 730 등을 매칭했으면 에베레스트란 말마따나 정상에 오를 만한 소리였을 텐데, 왜 내보냈습니까?
“자꾸만 들으면 들을수록 제가 원하던 소리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더군요. 레인지도 넓고 분해능력도 뛰어나고, 명쾌하면서도 힘찬 음 등에 취하고 한때나마 푹 빠져서 정이 들 대로 들었더랬지요. 그러나 제가 추구하던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차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착 가라앉는 소리가 아니라 찰랑찰랑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않았던 겁니다. 왜 있지요, 차리 채플린 영화를 보면 바이올린 곡이 많이 삽입되어 있잖아요. 거기서 나오는 멜랑콜리한 바이올린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바로 그런 어딘가 멜랑콜리하달까, 약간 어둡고 우수가 깃든 듯한 음이 제가 원하던 소립니다. 그래서 바늘을 바꿔보기도 하고 트랜스를 사이에 넣어보기도 하는 등 온갖 정성을 들였는데도 에베레스트에선 기대할 수 없었지요. ”

─ 그래서 독일제 빈티지 시스템으로 대대적인 전환을 한 겁니까?
“아닙니다. 독일제로 가기 전에 알텍을 한 6개월 써보았지요. 알텍을 택한 동기는 에베레스트 음에 불만이던 어느 날 왕립화라고 하는 분이 차린 오디오 숍에서 알텍 A7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지요. 2A3 진공관 앰프에 물려서 울리는 알텍 A7의 혼에서 나오는 소리가 그렇게 시원시원할 수가 없었어요. 특히 타악기 소리는 가슴이 확 뚫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베레스트에서 불만이었던 찰랑거림이 없고 무게와 알맹이가 느껴지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

─ 숍에서 잘 울리던 소리가 집에 오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지요. 더구나 알텍처럼 대형 스피커는 숍에서처럼 아파트에서 그대로 울리기가 힘들었을 텐데요.

“맞습니다. 첫째 마음대로 볼륨을 올릴 수 있어야지요. 우퍼는 동축형 605를 2개 사용하고 288-16G 드라이버를 세팅한 알텍 A5를 집에서 울리게 되었는데, 여기에 여러 가지 진공관 앰프를 매칭시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제가 바라던 소리가 아니었어요. CR형 진공관 앰프와 마란츠 7 같은 프리앰프, 알텍 807이나 매킨토시 MC60 같은 파워앰프 등을 연결해서 들어보았지만 재즈는 그런대로 좋은데 클래식 듣기엔 거북할 때가 많았지요. 다이내믹했지만 바이올린 소리 같은 소리가 오버돼서 날리고, 저음은 양이 많아서 중간소리가 부족한 듯했습니다. 300B 앰프도 써보았는데 소리는 고운 반면 가늘어져서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래도 제딴엔 알텍 소리를 완성시켜 보려고 애를 많이 썼지요. 이러던 참에 누가 독일제를 권유하더군요. 오이로딘을 배플 없이 알맹이만 빌려줄 테니까 한 달간만 들어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오이로딘을 알텍 옆에 놓고 근 한 달간 열심히 비교시청해 보게 된 겁니다.”

─ 어떻게 보면 아메리칸 사운드와 도이치 사운드를 비교해본 셈이군요. 어떻던가요?

“알텍보다도 클랑필름 오이로딘 쪽의 중역이 더 탄탄하고 충실했다고 할까요. 한마디로 알맹이가 있는 소리였어요. 또 알텍에선 고역이 지나치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하이에 올라갈 땐 쇳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클랑필름은 하이로 올라가도 쇳소리가 안 나더군요. 전체적인 면에서 둘 다 충실한 사운드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알텍 쪽은 호쾌하고 개방적인데, 클랑필름 쪽은 단정하고 응집력이 있는 소리가 아닌가 합니다. 특히 클랑필름에서 울리는 현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제 기호에 맞는 멜랑콜리한 음색이 스며 있어요. 겨울 회색빛 하늘 같은, 어딘가 어두운 소리는 독일제만이 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거실에 위치한 시스템들. 중앙의 철제 콘솔에 수납된 프리앰프는 독일 방송국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텔레푼켄 등의 진공관 앰프 세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리앰프 콘솔 좌측 위에는 EMT 927 AD플레이어가 있고, 그 아래로 포노 EQ 앰프인 EMT 139B와 텔레푼켄 V72(라인앰프 개조품) 포노 EQ 앰프가 보인다.

빈티지 운용의 재미와 멋은 매만지고 닦는 데 있다

모든 오디오 시스템은 울리기 나름이고, 또 재생음은 듣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매만지고 부품이나 선재 등을 갈아끼우고 하더라도 기본 특성은 변하지 않는 법. 그래서 이번 인터뷰가 미국제 빈티지 시스템인 웨스턴 일렉트릭을 가동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한 사장의 독일제 빈티지 시스템과 기본특성을 비교하는데 안성맞춤의 기회였다. 한마디로 웨스턴은 응집력있는 소리가 밖으로 퍼지는 감이 드는 음이고, 클랑필름은 안으로 보다 응집돼서 모아지는 듯한 음이었다. 당연히 웨스턴 쪽이 풍요로움으로 충만된 듯이 느껴지고 클랑필름은 단정하고 명징한 음으로 응축돼서 들린다. 이런 클랑필름의 음을 가지고 굳이 흠을 잡는 사람들은 뻑뻑하고 드라이하다고 평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또 이같은 기본 특성 때문에 일부 편견을 가진 전문가들은 웨스턴은 재즈에나 어울리는 시스템이고, 클랑필름은 클래식에 맞는 시스템이라고 단정짓기도 한다. 그러나 웨스턴으로 클래식을 훌륭하게 울릴 수 있으며 클랑필름으로 재즈도 멋지게 연주할 수 있다. 실지 이날 한 사장의 시스템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발라드와 사라본의 재즈보컬 등을 들어보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게 생생한 열기를 가지고 잘 울려주었다.

─ 그래서 결국 클랑필름 오이로딘 을 갖추게 되었군요.

“그렇습니다. 오이로딘 알맹이만 가지고도 제가 좋아하는 소리가 나왔는데 통을 짜서 들으면 상당히 좋아지리라는 기대감도 컸구요. 이 클랑필름 오이로딘 406(퍼머넌트 타입)은 능률이 굉장히 높아요. 아마 110dB은 될 겁니다. 여기에 물린 파워앰프는 텔레푼켄 V69A인데 클랑필름 앰프와 비교해서 소리가 다소 어둡고 무게가 느껴져요.”

─ 그런데 프리앰프가 대단해 보이는데, 프로장비인 모양이지요.

“네, 독일 방송국에서 사용했던 건데 모듈식으로 되어 있어서 일명 도시락이라고도 합니다. 처음엔 절반만 가지고 사용하다가 나머지를 주문해서 기다린 지 2년 되어서야 전부 갖추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선 완성된 것이 4세트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노이만 마이크와 텔레푼켄 M-10 릴덱만 연결시키면 완전 방송국 시스템이 되지요. 각 모듈을 보세요. 얼마나 합리적으로 제작되었는지 볼수록 감탄하게 됩니다. 모듈 제작사가 지멘스, 텔레푼켄, TAB, 에크밀러 등 각각인데도 규격이나 색상마저도 통일되어 있거든요. 이 프리앰프는 라인이 5단계를 거쳐서 소리가 나오는데 흔히 진공관을 많이 거치면 험이 나오지 않나 우려하지만 이 앰프는 도리어 소리의 응집력이 더 생겨나는 것 같아요. 쓰다가 트러블이 생길 땐 모듈식이니까 빼서 스페어 진공관이나 부품을 갈아끼우면 해결되지요.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이 프리만큼은 계속 사용하면서 아껴가며 들을 생각입니다.”

─ 그래도 고물은 고물이지요. 이런 고물들(?)을 갖다놓고 소리를 들으려면 다른 어떤 시스템보다도 더 정성을 들이고 또 어느 정도의 트러블은 각오해야 할 겁니다.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기계니까요. 저도 웨스턴 일렉트릭을 쓰면서 사소한 트러블은 감수해가며 듣고 있습니다만.

“저는 운이 좋아서인지 소리가 안정되진 않았지만 비교적 처음부터 잘 울렸어요. 가끔 트러블이래야 험이 나오는 정도였는데 이때는 모듈은 빼내고 모듈 속에 있는 관의 소켓을 잘 닦아서 들으면 해결되곤 했어요. 이렇게 청소한 후 다시 듣는 기분은 참 좋아요. 정기적으로 모듈을 하나씩 꺼내서 알콜을 묻힌 면봉으로 접촉면을 깨끗이 닦아내고 선 사이에 까맣게 낀 때를 씻어내거나 진공관 다리 등을 소제하다 보면, 일요일 같은 경우 모듈 하나 청소하는 데 저녁 먹고부터 밤 11시까지 걸립니다. 프리앰프 전체를 청소하려면 아마 한 달은 잡아야 할 겁니다.”

 

① EMT 927 AD플레이어에는 EMT 997 톤암이 장착되어 있다. 이분은 모노 사운드의 매력에 빠져 여러 개의 모노 카트리지도 소장하고 있다.

② 소장하고 있는 카트리지들. 왼쪽으로부터 토렌스 MCH 2, EMT TSD15, EMT OFD25(모노), EMT OFS25(모노)


이러면서 내놓는 청소용품만 해도 카메라 장비 박스에 가득하다. 옛날 기기를 만지려면 이 정도의 정성과 극성은 기본일 것이다. 게다가 빈티지 시스템을 장만하려면 인내심도 있어야하고 항시 비자금도 비축해두어야 한다. 상태가 좋은 물건이 나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고 스페어 부품이나 진공관이 하시라도 나오면 재빨리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머리도 좋아야 할 것 같다. 빈티지 시스템의 족보며 그 쓰임새 그리고 진공관이나 유닛의 명칭과 이에 붙어 있는 번호는 왜그리 많고 복잡한지. 머리가 나쁜 사람이나 기억력이 감퇴된 사람은 아예 본격적인 빈티지 입문은 엄두도 못낼 정도다.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빈티지하는 사람 나름이긴 하겠지만, 이에 걸맞는 중고 명반이나 모노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고 시중에 나오는 대로 확보할 수 있는 재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아무리 탐나는 중고 명반을 눈앞에 두고서도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무욕 무심의 경지를 터득하든가.

─ 빈티지 시스템을 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제 경우엔 옛날 기기를 많이 다루어보지 않아서 기기의 성능을 자세히 알 수 없고 또 얼마나 노후되고 손상된 부품들이 새로 교체되었는지, 트러블이 생겼을 때 AS는 확실히 받을 수 있는지 같은 문제들이 걱정이었거든요.

“그렇지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옛날 독일 기계는 요즘도 많이 국내에 들어오지만 대개 장사속으로 들여오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쓸 만한 건 얼마 안 되는 것 같아요. 쓰다가 말썽났을 때 사실 난감한 일이지요. 이런 경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 빈티지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일거리에요. 구할 당시 가급적 상태가 제일 좋은 걸 선택해서 사용하다가 그후 상태가 더 나은 물건이 나오면 하나씩 바꿔가는 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내하며 정성스럽게 매만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도리어 매력을 찾는 게 빈티지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 스페어는 많이 확보해 놓으셨는지요.

“프리앰프에만 다마(관)가 40개 내지 50개가 들어가는데 다마는 눈에 띄는 대로 확보해놓습니다. EMT AD플레이어에 들어가는 소모성 부품도 무시 못합니다. 톤암과 카트리지 접점의 텐션이 약해지면 접점이 불량해지는데, 이때는 톤암 신호선을 갈아야 하기 때문에 이 신호선도 예비로 사 놓아야 합니다. 부품 하나 보강하는 데 1년이나 2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빈티지는 기다리는 인내심이 없으면 못 합니다.”

─ AD플레이어는 EMT 927st네요. 토렌스 프레스티지를 예찬하시더니, 이것도 독일제로 통일하기 위해 교체한 겁니까?

“기왕이면 독일제로 통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동안 두 가지를 비교해본 결과, 프레스티지는 에베레스트엔 어울리는데, 클랑필름에는 어쩐지 맞질 않았어요. EMT 쪽의 소리가 착 가라앉고 제가 원하는 소리를 내주더군요.”
─ 그럼 CD는 듣지 않고 LP만 들으시나요?

“에베레스트를 쓸 때는 CD와 LP의 소리 차이를 못 느꼈는데 클랑필름 오이로딘에선 CD와 LP 차이가 많이 나더군요. CD음은 차갑고 가끔씩 거슬릴 정도로 경질이었어요. 그래서 사용하던 스투더 A730은 용인에 있는 별채에 갖다놓고 평판 배플에 넣은 지멘스 동축형 스피커와 자작 진공관 앰프에 연결해서 주말마다 듣고 있고 이 집에선 LP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③ 뒤에서 본 클랑필름 오이로딘 406 스피커의 내부 모습. 인클로저는 후면 개방형이다. 맨아래에는 텔레푼켄 V69A 파워앰프가 놓여 있다.

④ 독일 빈티지의 정수를 들려주는 클랑필름 오이로딘 406 스피커 시스템. 약간은 어둡고 우수가 깃든 듯한, 그 멜랑콜릭한 사운드에 심취해 있다.

힘있게 가슴에 와 닿는 모노럴 사운드의 매력

─ 모노판도 자주 듣습니까?

“EMT 모노 바늘을 갖춰 놓고 스테레오와 번갈아가며 듣고 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레인지가 넓은 소리보다 모노 쪽이 더 좋을 때가 있어요. 좁으면서도 힘있게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할까. 어떤 시스템에선 실제의 저음보다 부풀린 저음이 나오는데 분위기로나 오디오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저는 거부감이 생기거든요. ”

─ 주로 많이 들으시는 곡은 물론 클래식이고 그중에서도 실내악이겠지요? 재즈는 거의 안 들으십니까?

“관현악곡이나 재즈도 가끔은 듣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듣는 곡은 역시 실내악곡입니다. 실내악곡 중에서도 베토벤과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곡이나 4중주곡이지요. 그외 성악곡과 바이올린, 피아노 소나타도 자주 듣는 편입니다. 하이페츠, 로즈, 피아티고르스키가 연주한 베토벤의 세레나데 제8번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납니다. 그 제2악장의 선율을 들어보세요. 애잔하면서도 감동적입니다.”

─ LP를 꽤 모으셨네요. 요즘도 중고 레코드 가게 출입이 잦으신 모양입니다.

“사실이지 고 원장한테만 살짝 얘기하는데(사모님이 바로 옆방에 계신 탓인지) 기계보다 레코드에 더 투자하게 됩니다. 중고판 괜찮은 건 부르는 게 값입니다. 들고 집에 들어올 땐 괜히 집사람 눈치가 보여져요. 그래서 가급적 집사람 모르게 몇 장씩 들여놓는데, 때로는 차 트렁크에 숨겨 놓았다가 집사람이 없을 때 살짝 가지고 들여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품할 때는 당당하게 집사람 보는 앞에서 들고 나가지요.”

─ 마지막으로, 장래 용인에 집을 짓고 천정이 높고 널찍한 리스닝룸을 마련한다면 어떤 시스템을 설치할 예정입니까?

“이 클랑필름 오이로딘 유닛에다 정식으로 2m 배플을 짜서 세팅할 겁니다. 그리고 웨스턴 일렉트릭을 한세트 더 욕심내서 듣고 싶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레코드 래크. 이분이 가장 즐겨 들으시는 음악은 실내악곡인데 그중에서도 베토벤과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곡이나 현악4중주곡이다.

에필로그

그 누가 옛날 영화 속의 멜랑콜리한 바이올린 소리를 그리워한다면, 단지 옛날로 돌아가고픈 회귀본능이라고 단정하거나, 한갓 감성의 사치라고 일축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어가고 청각이 둔해져 갈수록, 그리고 오디오 경륜이 숙성되어 갈수록, 고풍스런 음색과 널찍하진 않지만 충실하게 익어서 울리는 소리를 마음의 귀로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릇 많은 연주가들이 좋은 악기를 소유하고 싶어하며 기량이 뛰어나고 연주가 숙성될수록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오래된 명기를 꿈꾸는 것처럼, 옛날의 명기를 가지고 음악을 즐기며 감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