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제님 부산일보 기사

2007. 7. 19. 14:00오디오&AV

 

2000년쯤에 부산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마니아] <15>오디오 조희제씨

낡은 진공관 속 순정한 音에 젖었죠

발품 팔아 완성한 독일제 '빈티지' 장비

발산하는 절제된 음률에 매료



오디오 앞에서 앰프 등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는

조희제씨.

조희제(47.회사원.부산 금정구 부곡동)씨, 그는 오디오 마니아다. 좀더 범위를 좁히자면, 트랜지스터보다는 진공관 방식을, 현대음악보다는 클래식을 훨씬 좋아하는 정통파다.


조씨는 3개월 전 아파트 거실에 지금의 장비를 구축했다. 물론 많은 고뇌와 발품을 팔아 완성한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장비부터 살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턴테이블. 요즘 신제품과 비교하면 배 이상의 큰 덩치를 자랑한다. 나무 몸체는 낡아 만지면 손가락에 가시가 꽂힐 것 같다.독일 EMT 930ST 모델로 나이가 주인보다 3살 많다. 같은 EMT의 TS15 카트리지와 제법 비싼 바늘을 달고 있다.


왼쪽에 자리한 프리앰프(pre―amplifier). 이는 다른 마니아가 자작한 것인데 부속은 독일제로 진공관방식이다. 그리고 CD데크 아래 2개의 파워앰프. 텔레푼켄 V81 모델로 역시 진공관 방식 독일제다. 방송국 스튜디오 모니터용으로 제작된 것. 역시 턴테이블과 비슷한 나이다.


CD데크를 소개 않는 것은 일단 주인이 CD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소개할 필요가 없어서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모델.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 대형 스피커가 정말 볼만한데, 이건 그의 작품이다. 자작했다는 말이다. 가로, 세로 1.2m 크기의 대형 판자에 12인치 우퍼와 폴더혼 등이 덩그렇게 붙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각 박스형태가 아니라 평판형 스피커다.


웅웅 거리는 통 울림 소리가 없어 자연스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저역대 음에서 약하고 전체적으로 양감이 떨어지는 단점은 있다. 판자는 목공소에 주문해 만들었고 부품은 독일 유학생을 통해 입수한 것인데 역시 40년 넘은 제품이다.


가장 최근 구입한 음향컨디셔너는 그가 갖고 있는 오디오 장비 중 유일한 신품이다. 어른키 만한 높이에 아무런 전기장치도 없고 그냥 나무틀 속에 올록볼록하게 홈이 패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게 가당찮은 능력을 발휘한다고 자랑이다. 그냥 오디오 뒤에 서 있을 뿐인데, 불필요한 소리를 걸러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능력을 발휘한단다.


'오디오 앞에 앉았을 때 스피커를 통해 직접 듣는 소리, 즉 직접음은 전체의 20%에 불과합니다. 스피커 뒤에서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50%나 되죠. 나머지는 여기저기서 반사되는 소립니다. 컨디셔너는 이중 뒷소리를 잘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앰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평판 스피커 뒤에 저역음의 순도를 높여주고 질감도 개선하는 베이스트랩이 자리하고 있다. 음향컨디셔너와 비슷한 역할이다. 카세트데크나 라디오를 듣는 튜너는 아예 없다.이상이 그의 집 거실에 설치돼 있는 장비내역.


그는 이와 유사한 장비를 작은방에 한 세트 더 갖고 있다. 그곳은 혼자서 음악을 즐길 때 사용하는 전용공간이다.


이처럼 중고장비, 독일제, 진공관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40∼50년 된 중고장비, 즉 빈티지(vintage·'오래되고 가치 있는'이란 뜻이다)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냥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라고 말한다.


천성이 클래식 쪽이다 보니 부드럽고 꾸밈없는 옛 장비가 좋단다. 독일제를 선호하게 된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즉 독일제는 절제된 소리를 낸단다. 빼빼마른 소리지만 정확하고 차분하다. 미국은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며 영국은 신사답고 중용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도 처음부터 독일제를 좋아한 것은 아니고 미국과 영국을 차례로 거친 뒤 정착했다.


진공관 방식.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자와 비유했다.'트랜지스터를 통해 나오는 음색을 화장 짙게 한 화려한 여성으로 치자면, 진공관은 화장기 전혀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여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쉽게 싫증나질 않습니다. 클래식엔 적격이죠.'


LP, CD 등이 없다면 오디오는 그야말로 무용지물. 조씨는 LP 6천여 장을 갖고 있다. 모두 클래식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이름은 떨치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연주자들의 음반을 다수 갖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요한나 마르치, 지네트 느베, 이리카 모리니이다 헨델 등으로 모두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다. 라벨이 전쟁터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 출신 연주자를 위해 작곡한 '왼손을 위한 협주곡'도 그가 아끼는 음반중 하나.'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오디오 때문에 집사람과 티격태격 할 때가 많아요. 음악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해하기 힘든 가 봅니다.'


그는 희귀 음반이 나타나면 일단 손에 넣고 본다. 자연히 집에 들고 들어가는데 큰 일.


자동차 트렁크에 모아뒀다가 밀수범처럼 한 장씩 몰래 반입한다. 그러다 아내에게 들키면 '갖고 있던 것과 바꿨다'고 둘러친다. 그러면 부인은 '바꾸는데 판은 왜 자꾸 늘어나요?'라고 일격을 가한 뒤 화제를 돌려버린다.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는 거다. 이렇게 되는데 30년이 걸렸단다.


오디오 세계에는 '미신'이 있다.'이렇게 하니 좋더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이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따라서 조씨는 '자기한테 맞으면 그게 좋은 거'라고 말한다. 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부를 한분 모시라고 권한다.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오디오기 때문이란다.


PC통신 하이텔의 하이파이 동호회 '소리마을' 부산방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요즘 은근히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틈만 나면 대중가수 조하문의 노래를 틀어대기 때문이다.'정 안되면 사위라도 잘 얻어 물려줄까합니다.'


김기진기자 kkj99@pusanilbo.com